[e엔터테인]2000 영화계 결산

올 한해 국내 영화계를 정리해 보면 「공동경비구역 JSA」로 시작해 「공동경비구역 JSA」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만큼 이 영화는 흥행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위기에 빠질 뻔한 한국 영화계를 구원했다. 실제로 JSA가 개봉되기 전, 그러니까 9월 이전까지 한국영화의 객석 점유율은 26∼27%에 머물렀다. 지난해 객석점유율은 36.1%. 영화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영화산업에 대한 거품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 영화 한 편으로 점유율은 단박에 33%대로 상승했다. JSA는 9월 9일 추석시즌에 개봉돼 현재까지 3개월 이상 상영되면서 서울에서만 240만명, 전국적으로는 540만명의 관객을 모았다. 한국영화 사상 최고 기록이라는 「쉬리」의 580만명 기록을 깨는 것도 이제 시간문제로 보인다. JSA는 이와 함께 갖가지 신기록을 낳기도 했다. 최다 스크린수 확보에서부터 최단 기간내 서울관객 100만명 동원, 혹은 200만명 동원 등 흥행성적에서 최고 기록을 양산했으며 우리나라 영화사상 최고가 수출영화라는 영예도 안았다.

올해 개봉된 국내 영화는 50편 정도. 2000년 새해와 함께 개봉된 「박하사탕」을 비롯해 최근의 「컷 런스 딥」과 「불후의 명작」 등에 이른다. 상반기 한국영화는 「박하사탕」과 「거짓말」 「반칙왕」 등 몇 편의 작품을 제외하고 흥행에서 참패행진을 계속했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에서부터 「플란다스의 개」 「인터뷰」 등 일련의 작품들은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상업성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

이런 가운데 「하피」에서부터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 「공포택시」 등 여름시즌에 경쟁적으로 개봉된 공포영화들이 미흡하고도 무성의한 작품 완성도로 관객들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받으면서 가뜩이나 가라앉고 있던 국내 영화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개봉된 공포영화 가운데 「가위」 정도만이 체면치레의 흥행수준을 유지했다.

이처럼 비교적 적은 예산을 들인 소품 영화들이 잇따라 실패를 거듭한 것과 비교할 때 JSA의 대박급 성공은 국내 영화계의 명암을 극명하게 대비시킨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JSA 덕에 국산영화의 시장경쟁력은 하반기들어 가까스로 회복되고 영화계 역시 활력을 얻긴 했지만 이를 큰 그림으로 본다면 이른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몇몇 작품들에 의해 시장구조가 재편되는 독과점 현상이 노골화됐다.

실례로 「공동경비구역 JSA」는 장기간 전국 스크린수를 100개 가까이 선점함으로써 같은 시기에 개봉됐던 다른 한국작품뿐 아니라 수입외화 역시 흥행에서 큰 타격을 감수해야 했다. JSA와 같은 날 개봉됐던 이현승 감독의 「시월애」의 경우 비교적 괜찮은 성적을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수 확보에 실패해 조기종영의 수순을 밟아야 했다. 극장들이 이렇게 일부 작품, 그러니까 될 만한 작품에만 극장문을 열어주는 편중화현상은 「단적비연수」와 「리베라메」가 개봉된 11월 들어 더욱 극성스런 모습을 연출했다. JSA와 단적비연수, 리베라메 세 편은 11월 내내 서울 총 200여개 스크린 가운데 120여개를 차지했을 정도다. 이같은 상황 탓에 일부 영화의 경우 하루 혹은 이틀 상영이라는 초단기 개봉사태가 줄을 이었다.

일부 큰 영화들에 의해 산업구조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은 이들 영화를 배급하는 메이저급 영화사들의 부침을 조율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지난 3∼4년간 국내 최대 배급사로 군림해 온 시네마서비스는 「비천무」 등 몇 편을 제외하고 올 한해 동안 부진한 성적을 면치못해 정상의 자리를 위협받았다. 반면에 JSA외에도 「아메라칸 뷰티」와 「글래디에이터」 등 외화들을 잇따라 성공시킨 CJ엔터테인먼트는 올 한해를 기점으로 명실공히 메이저 영화사로 급부상하는 성과를 얻었다.

CJ의 경우 연말 개봉할 「치킨 런」과 내년도 작품 「무사」 등의 흥행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돼 그 세력이 더욱 확장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블록버스터급 영화들의 치열한 경쟁속에 초저예산 독립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성공은 올 한해 국내 영화계의 최대 이변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일로 꼽힌다. 개봉 당시 서울 단 한개 극장에서 상영됐던 이 영화는 평단의 호평과 영화팬들의 입소문만으로 장기상영의 길을 트는 데 성공함으로써 앞으로 이런 류의 영화들 역시 일반극장 상영을 통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부산국제영화제 등을 통해 해외 영화인들에게서도 찬사를 받았으며 이 영화를 만든 류승완 감독은 11월 열린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는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이 그 어느 해보다 뚜렷한 성과를 거둔 해이기도 하다. 5월에 열렸던 칸 국제영화제에 「춘향뎐」이 우리영화로서는 처음으로 본선 경쟁부문에 진출한 것을 비롯, 「박하사탕」과 「오! 수정」 「해피엔드」 등 또다른 우리 작품들이 이 영화제에 대거 출품돼 호평을 받았다. 「박하사탕」의 경우 뒤이어 열린 체코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했고 김기덕 감독의 「섬」은 베니스 국제영화제 등 각종 국제영화제에 출품돼 국내에서 얻었던 반응 이상의 성과를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같은 국제영화제 진출은 실질적인 수출증가로 이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올 한해 우리영화의 수출액은 작년 대비

2.5배인 약 700만달러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수출실적은 300만달러 정도. 수출편수는 58편에서 38편으로 크게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액수가 늘어난 것은 이제야 한국영화가 해외시장에서 제값을 받을 만큼 경쟁력을 얻었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최고 수출가를 기록한 영화는 일본에 200만달러를 받고 판매된 「공동경비구역 JSA」. 「단적비연수」와 「텔미썸딩」 「쉬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쉬리」와 「해피엔드」 「섬」 등은 가장 많은 나라에 수출된 작품으로 뽑혔다.

<필름2.0 오동진기자 ohdjin@film2.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