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회의 디지털세상 이야기>28회-고객 입장에서 생각하라

세일중인 어느 백화점에 들렀다. 몸을 서로 비비며 지날 정도로 붐볐다. 간신히 원하는 구두매장을 찾아 한참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되었다. 미리 생각해 두었던 구두를 찾아 신어보니 약간 작았다. 큰 사이즈를 찾아 신어봤지만 이번에는 아내가 보더니 잘 안 어울린다고 한다. 다른 스타일로 두 개를 더 신어보았다. 처음 것은 너무 뾰족해 보였고 다음 것은 좀 유치해 보였다.

결국 사지 못하고 그대로 나오는데 나를 상대했던 점원이 『마음에 드시는 것이 없어 죄송합니다. 다음에 오시면 더 좋은 것을 준비해 놓겠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그 인사에 나는 이 점포에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만약 그 점원이 『산다고 해서 열심히 도와드렸는데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하십니까』라고 했다면 아마 다시 그 가게에 갈 생각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고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얘기지만 만약 이런 상황이 국가 간의 문제로 벌어지면 우리는 다르게 반응한다. 얼마 전 대우자동차와 포드의 문제를 위의 백화점 예와 비교해서 다시 한번 살펴보자. 포드가 대우 인수 의향서에 서명한 것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조건이 맞으면 사겠다는 것이다. 단 조사할 동안은 다른 사람과는 상담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구두방 점원에게 구두를 보여 달라고 말하는 자체가 의향서에 서명하는 것과 같다. 그 순간부터 점원은 100% 시간을 그 손님에게 쏟는다. 손님이 싫다하면 즉각 다른 것을 찾아 준다. 포드는 많은 전문가를 투입해서 조사를 실시한 후 인수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많은 구두를 신어보고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그냥 사지 않고 나오는 것과 같다.

포드가 실사 후에 인수 포기를 발표했을 때 우리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의향서에 서명하고도 사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자기 집안 문제로 공연히 우리만 고생하게 했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감정적인 반응은 스트레스 해소에 일시적인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 손해는 자신에게 돌아온다. 고객이 사지 않고 그냥 나가면 오히려 모든 감정을 누르고 그 원인을 냉철히 분석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모자라는 점을 보완해 다음 고객이 왔을 때 반드시 팔 수 있도록 바꾸어야 한다. 실수의 원인을 알아 고칠 줄 아는 사람에게 기회는 계속 오는 것이다.

포드로부터 우리가 얻을 교훈은 무엇인가. 인수하지 않은 원인을 솔직히 드러내 놓고 고치는 것이다. 여러 걸림돌 중에 투명성과 노사 문제가 있었다. 경리장부를 작성된 대로 믿을 수 없다면 더 이상 협상이 진행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제는 우리끼리 통하던 방법들이 더 이상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려면 그 사회에 맞는 룰을 지켜야 한다. 동네 축구에서 월드컵으로 가려면 우리의 생각과 방법이 바뀌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투명하지 않으면 국제무대에 진출할 수 없다. 그 기준에 맞는 정직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제무대의 일원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노사문제도 우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다.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법을 지키는 것이다. 법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법위에 국민정서가 있고 그 위에 떼쓰는 집단이 있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법질서는 지켜져야 한다.

법을 지키는 사회, 이것은 분명히 정부의 몫이다. 정치적인 이유나 일부 권력층을 비호하기 위해, 또 심한 반발을 우려해 법 집행을 바로 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면 이 사회가 올바로 설 수 없다. 법질서를 지키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담은 법질서가 무너짐으로 인해 초래되는 부작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노나 사가 법을 어기면 단안을 내려야 한다. 둘다 법 테두리 안에서 공존할 때에 문제가 풀릴 것이다.

대우자동차와 포드의 관계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고객이라고 항상 예의 바르고 우리 생각대로 움직여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당하기 힘든 것을 요구하고 불평하고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감정을 누르고 냉정히 고객의 입장에서 문제를 보는 사람에게는 길이 보인다. 디지털시대에서의 기회도 자기감정을 다스리는 자에게 주어진다.

김형회 (주)바이텍씨스템 회장(hhkim@bite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