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김일웅 메모리영업 담당 이사는 지난 13일 주요 거래선으로부터 10여통의 e메일을 받았다.
컴팩·델컴퓨터·IBM·게이트웨이·HP 등 거래선들로부터 온 전갈로 램버스 D램의 구매를 늘리겠다는 전갈이다. 낯선 이름의 중국업체도 끼어 있었다.
지난주까지만해도 없던 일이어서 김 이사는 다소 어리둥절했으나 『기업용 수요가 늘어나 내년 초부터 판매가 활발할 것』이라는 거래선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김 이사는 서둘러 생산부문에 여부를 확인하고 거래선에 통보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다.
램버스 D램에 대한 수요가 갑자기 반등세로 돌아섰다. 일시적인 반등인지 앞으로 본격적인 수요증가인지 속단하기 이르나 일단 시장침체에 허덕이는 D램업체에는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 펜티엄4 PC 수요 폭증 조짐=14일 업계에 따르면 컴팩·IBM·델컴퓨터 등 미국의 주요 PC업체들은 이번주 초 주요 D램 생산업체에 대해 램버스 D램의 공급을 확대해줄 것을 긴급 요청했다.
이들 PC업체는 내년 상반기 램버스 D램 구매물량을 최대 60%까지 확대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주문 쇄도는 PC업체들이 지난달 20일 펜티엄4 탑재 PC를 출시한 이후 실시한 소비자조사 결과 내년 초부터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특히 기업 수요가 급증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 기업들이 99년 말 이후 자제했던 전산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을 낳았다.
주문이 늘어나자 삼성전자를 비롯해 NEC와 도시바 등 주요 램버스 D램 생산업체들은 서둘러 생산계획을 다시 짜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텔이 820칩세트의 출시를 연기한 지난 10월 이후 램버스 D램의 생산을 줄여왔으나 최근 수요가 강세를 보이자 내년 2월까지 생산량을 애초 계획보다 두배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NEC와 도시바도 램버스 D램의 양산라인을 내년 초 대폭 증설하는 계획을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주요 거래선으로부터 펜티엄4 탑재 PC 수요가 이달 말께부터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램버스 D램의 생산을 늘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경쟁사보다 생산능력이 우수한 만큼 물량으로 초기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일시적인 반등인가, 본격적인 수요 진입인가=펜티엄4 PC는 지난달 20일로 출시됐으나 기대 밖으로 수요가 부진했다. PC업체들도 램버스 D램의 구매 확대 여부를 결정하지 못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주들어 구매를 확대하고 나선 것이다. 펜티엄4 PC가 뜬다는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PC업계 관계자들은 『최근 수요가 늘어났다고 해도 북미경기의 하강국면을 감안하면 펜티엄4 PC 수요의 지속적인 반등은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램버스 D램 생산업체들은 『PC시장 전반이 활기를 찾지 못한다 해도 일정 정도를 유지하는 PC수요가 펜티엄4 PC에 집중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PC용 램버스 D램 사업을 확대할 방침을 내비쳤다.
◇ 램버스 D램의 수급동향=D램업체들이 내년에 예상한 램버스 D램 생산물량은 64M 기준 약 5억개 정도다.
PC업체들이 내년에 판매하기로 한 펜티엄4 PC 물량은 2000만대 이상으로 램버스 D램 수요는 6억5000만개에 이를 전망이다. 어림잡아 30% 이상의 수급불균형이 생길 전망이다.
더구나 램버스 D램의 수요처는 PC 말고도 고성능 게임기, 세트톱박스 등이 있어 구조적으로 공급이 딸릴 수밖에 없게 됐다.
램버스 D램이 부족해 펜티엄4 PC를 생산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삼성전자·도시바·NEC 등이 수율향상과 라인증설을 통해 생산수량을 늘리고 있어 공급부족은 내년 하반기에나 풀릴 것으로 보인다.
◇ D램업계에 미칠 영향=현재 램버스 D램을 생산하는 업체는 삼성전자·도시바·NEC 정도다.
현대전자·마이크론·인피니온 등은 설비투자의 지연, 램버스와의 불편한 관계 등으로 인해 당장 램버스 D램 시장에 가세할 수 없는 입장이다.
미국 PC업체들의 예측대로 내년 초에 펜티엄4 PC의 수요가 급증하고 또 신규 및 대체수요의 상당부분을 잠식한다면 램버스 D램을 생산하지 못하는 업체에는 악몽이 될 수 있다.
주력인 SD램시장을 램버스 D램에게 빼앗기는 것은 물론 그 여파로 가격도 하락해 채산성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램버스 D램 생산업체들은 차세대 D램시장 선점은 물론 수익성도 확보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세계 D램업체들이 올해 말과 내년 초 펜티엄4 PC 시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