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상거래(EC) 시장의 확대로 택배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차리면 돈 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크고 작은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택배시장에 뛰어들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하는 치열한 선점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택배업체간 시장선점을 위한 과열경쟁과 물량확보를 위한 출혈경쟁도 심심치 않게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여타 산업과 달리 그 생성 시기가 짧아 업계라는 말이 생긴 것도 몇 해 안되는 데다 업계를 대변하는 공식적인 협회도 설립돼 있지 않은 것이 택배업계의 현실이다.
따라서 택배업계는 경쟁업체 이름만 들었지 사장이 누구인지, 어떤 면이 강하고, 또 특화된 서비스로 어떤 것을 갖추고 있는지 서로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이런 점에서 대형 택배업계를 대표하는 현대택배 최하경 사장(56)과 중소택배업계를 대표하는 오렌지택배 구명완 사장(35)의 만남은 이미 만남 자체에서 갖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어찌보면 적대적 경쟁관계에 놓여있지만 나눠먹을 파이가 크지 않은 택배시장에서 파이를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두 사람 모두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대의 벽을 넘기 위한 둘의 대화는 먼저 택배업계의 현안과 문제점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현대택배의 최 사장이 21살이나 위지만 업계에서는 구 사장이 선배격. 택배업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묻자 최 사장은 업계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다며 넌지시 구 사장에게 먼저 얘기할 것을 권했다.
구 사장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택배업이 성장가능성이 큰 것만큼은 사실이다. 그래서 시장 선점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택배를 필요로 하는 주변 여건의 변화와 발전에 비해 택배시장은 아직 미미하다. 따라서 무차별적 가격경쟁으로 나갈 것이 아니라 서비스 경쟁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던 최 사장도 동감의 뜻을 표시했다. 『우리나라 택배시장이 과거 일본의 택배시장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답습하고 있는 것 같다. 업체의 난립과 과도한 중복투자로 소모되는 재원이 너무 많다. 모든 택배업체들이 가진 각각의 입장이 달라 나오는 문제들이다. 이런 부분들을 이해하고 괴리감을 극복하는 것이 택배업계가 발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택배업계를 바라보는 두 사장의 시각에서 나타난 것처럼 현재 택배업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저가의 출혈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점이다. 또 이러한 가격경쟁에 대해 대형 택배업체와 중소택배업체의 입장이 달라 서로를 탓해 온 것도 사실이다.
대형업체 입장에서는 택배서비스가 제값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신규업체나 중소업체의 저가정책 때문으로 돌렸고 중소업체는 대형업체간의 물량확보로 인한 과당경쟁이 시장가격을 어지럽히는 가장 큰 이유라고 보아왔던 것이다.
이와 관련, 최 사장은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중소택배업체의 택배 가격이 너무 싸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가격경쟁을 중소택배업체에서 자제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며 문제를 슬쩍 중소택배 탓으로 돌렸다.
그러자 구 사장은 『가격 경쟁은 모든 택배사가 마찬가지다』며 『대형 택배사가 나서서 중소택배사의 가장 큰 어려움이 자금부족임을 이해하고 보유하고 있는 물류인프라를 공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적정한 가격 경쟁을 얘기할 때 비용절감에 관한 얘기가 안나올 수 없다. 비용절감을 위한 물류인프라 공유로 얘기가 이어졌다. 가격경쟁이 문제가 되는 것은 택배서비스에 소요되는 물류비용이 워낙 커서 이익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적정한 가격경쟁은 물류비 절감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구 사장은 『전체 시장의 확대가 중요하고 이와 더불어 택배업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공정한 가격을 찾아야 한다. 공정한 가격은 물류비용 절감이 밑바탕에 놓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대형 택배업체와 중소택배업체가 물류인프라를 공유하면 좋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서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이해하고 물류를 개방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업계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나름대로의 해결방안을 제시했다.
최 사장도 이에 대해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주고받을 수 있는 부분,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 모든 업체들과 협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진행되자 자연스럽게 협력방안을 찾는 얘기들이 나왔다. 공동 물류망 형성이나 대형택배업체와 중소택배업체가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로 초점이 모아졌다.
최 사장은 『현재까지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조만간 모든 택배업체가 참여하는 협회 구성에 나서볼 생각이다. 얼마 전 발족한 전국택배연합회에 대형 택배사가 참여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적극적인 공조 의사를 나타냈다.
그러자 구 사장도 이에 뒤질세라 『제 가격 찾기 운동이나 업체간 차별화된 서비스 상품 개발은 한 업체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거리나 서비스에 따라 가격을 표준화하고 택배서비스를 세분화하는 것은 모든 업체가 공동으로 노력해야 이뤄질 수 있는 결과』라며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두 사장은 택배업체가 특화·지역화로 나가야 하며 전국택배연합회를 기초로 모든 택배사들이 뭉칠 수 있는 협회 구성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구 사장은 『최하경 사장님을 직접 만나보니 친숙한 집안 형님같은 느낌이어서 좋았다』며 『회사나 집에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오너이기에 현대택배도 화합을 통해 더욱 커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인사말을 했다. 최 사장도 『택배업의 발전에는 IT가 중요한데 신문을 통해 보니 오렌지택배가 택배 시스템 분야에서 상당한 수준에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택배시스템 등 여러 분야에서 협조하고 배울 것은 배우는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고 화답했다.
<임동식기자 dslim@etnews.co.kr>
오렌지택배 구명완 사장
△65년 충남 서천 출생
△경기대 독어독문과 졸업
△한국기술개발연구소 연구원
△동서택배/중부공영터미널 정보운영실장
△현 새한정보기술(오렌지택배) 대표
최하경 현대택배 사장
△44년 전남 나주 출생
△서울대 독어교육과 졸업
△현대상선 미주현지법인 대표이사
△현대전자 통신영업본부장
△현대전자 위성서비스사업단장
△현 현대택배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