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차라리 3비(非)로 가지

LG의 강력한 이의제기로 여진(餘震)이 계속되긴 하지만 이번 차세대이동통신(IMT2000)사업자 선정은 일단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결과가 확정된 이후에도 가장 우려되던 비리 의혹이나 정부 개입설이 자취를 감춘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 때문인지 사업자 선정 주무부처인 정통부 고위관료들은 오랜만에 홀가분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다. 큰 짐을 털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이 굳이 「절반의 성공」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사업자 선정 과정은 성공」 「산업 정책은 실패」라는 분석이 압도적이라는 이유에서 비롯된다. IMT2000 정책을 줄곧 지켜본 기자 역시 시장점유율 1, 2위 사업자가 모두 비동기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사실상 정부가 견지해 온 산업정책 기조와는 정면으로 어긋난 결과로 해석돼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정부는 그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복수 표준에 의한 균형있는 산업발전』을 외쳤고 사업자들이 모두 비동기를 주장하자 이를 관철하기 위해 엄청난 비난을 무릅쓰고 동기를 반드시 포함시키는 강제조정까지 단행했었다. 그 이면에는 국내 산업기반 자체가 동기를 전제로 성장,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수출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정부의 판단이 깔려 있었다. 어찌보면 이같은 산업정책적 접근이 이번 사업자 선정의 핵심이었다.

시장 점유율을 이 시점에서 속단하긴 어렵지만 현재 구도가 유지된다면 국내시장은 비동기가 80% 이상을 장악, 동기는 명맥은 고사하고 자칫 퇴출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는 예측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물론 정통부는 『동기산업 육성을 적극 추진하겠다. 핀란드의 노키아처럼 최소한의 내수 규모만 확보돼도 수출에는 힘이 된다』고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래서 정통부는 동기를 살리고 유지 및 발전시키는 산업정책 마련이 발등의 불이 됐다. 정통부는 『이럴바에야 정부가 그 난리를 치고 선정원칙을 바꿀 필요가 있었나. 차라리 처음 의지대로 3비로 가도 좋았을 걸』이라는 업계의 목소리를 심각히 새겨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