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 다니는 A씨(경기 일산 주엽동). 아침에 졸린 눈을 뜨자마자 신문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에 들어간다.
얼마전 한참을 미뤄오던 끝에 집에도 ADSL을 깔았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제일 먼저 주식분석 애호가들의 모임에 들어가 전날 주식시장에 대한 평가와 오늘 시황전망에 대해 수북이 올라온 글들을 찬찬히 검색해 나가기 시작한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따로 메모해 자신의 e메일로 날려 놓는다. 주식동호회를 빠져나온 후 얼마전 가입한 등산클럽에 들어가 오는 주말 북한산 산행일정을 체크한다. 그리고 회원들에게 산행이 끝난 후 뒤풀이 장소로 어제 저녁 회사 근처에서 들렀던 모듬불고기집이 어떠냐는 추천의 글을 약간의 맛평가와 함께 올려놓는다. 출근해서는 업무 짬짬이 주식분석애호가 회원들과 e메일을 주고받으며 단타매매를 거듭한다.
비슷한 시각 A씨의 부인 B씨.
아이들을 모두 등교시킨 뒤 컴퓨터 앞에 앉는다. 사실은 ADSL을 설치하자는 주장을 남편보다 강력하게 한쪽이 B씨 자신이었다.
우선 최근 아파트단지 자체적으로 만들어진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지사항을 점검한다. 단수·단전·소독·분리수거·알뜰시장 등의 일정을 꼼꼼히 체크한다. 그리고 난 후 그날 저녁에 있을 반상회 안건 중 하나인 생활필수품 인터넷 공동구매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 게시판에 올려 놓는다.
이어 아이들이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의 학부모회 사이트에 들어가 챙겨야 할 학교일정을 살펴본다. 마침 1주일 뒤에 열리는 「학부모와 함께하는 백일장」에 참석하기로 하고 온라인등록까지 마친다. 오후엔 얼마전 친구찾기 사이트를 통해 만난 부산에 사는 옛친구와 실시간 채팅을 하며 살아가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생활이 바뀌고 있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시작한 지 수만년의 기간동안 전쟁·질병·정복·지배·멸망
등의 과정을 통해 집단형태에 대한 물리적 변화는 수없이 겪어왔지만 사이버커뮤니티의 생성처럼 인간집단의 질적인 변화를 몰고온 것은 일찍이 없었다.
네티즌·비네티즌이라는 구분이 어색할 정도로 인터넷이 생활 자체가 돼버린 지금, 사이버커뮤니티도 시공간·지역·관심분야·모임종류·규모·성격의 차이를 뛰어넘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음식문화를 함께 토론하는 동호회에서부터 군대시절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들의 사이트에 이르기까지 별처럼 무수한 사이버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소멸해 간다. 물론 대다수의 커뮤니티가 반짝했다 곧 소멸하는 수순을 밟지만 이 또한 여러 커뮤니티가 생겨날 수 있는 기회의 확대라는 측면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사이버커뮤니티의 활성화는 미래사회 발전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인터넷 이용인구가 외형적 성장의 표시장치라면 사회전반에 사이버커뮤니티의 구성이 얼마나 짜임새 있고 내용성 있게 갖추어졌느냐가 21세기 사회의 선진성과 정보화수준을 평가하는 진정한 잣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이버커뮤니티의 형성이 사회전반에 생산적인 영향을 미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나가겠지만 인간생활의 편리와 가치향상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와 개선작업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상업성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현재의 커뮤니티 생성·소멸요건을 온라인 이용자의 입장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이버커뮤니티가 오락·수익성만을 쫓아 무한질주하기 이전에 이용자들이 커뮤니티 안에 들어와 누릴 수 있는 정보향유권을 먼저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천태만상의 사이버커뮤니티가 사회발전에 진정으로 기여하고 인간생활의 풍요로운 터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그만큼 가치있는 콘텐츠의 확보가 필수적이다. 온라인 콘텐츠의 수준과 품질을 높이려는 노력이 사회개혁의 무게만큼이나 큰 의의를 지니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