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강대국 사이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중국이 일본을 정복하거나 일본이 중국 대륙을 침략할 때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요충지였다. 또 러시아가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를 얻으려고 항상 군침을 흘리던 곳이기도 했다. 그러니 주변 나라와의 관계에서 분쟁이 그칠 날이 없었다. 지금까지 기록된 것만도 980번 이상의 난리를 겪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고 불리는 것은 조용해서가 아니라 하루라도 조용한 아침을 가졌으면 하는 소망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 정도로 시련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웠다. 당장 이루지 않으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 민족에게는 「빨리 빨리」가 몸에 밴 습성이 되었고 이는 외국인들이 우리말을 배울 때 가장 먼저 익히게 되는 낱말이 되었다.
한국사람이 미국 여행중 중국식당에 들어갔는데 마침 주인이 우리말을 아는 중국인이었단다. 반가워서 앉자마자 가장 빠르게 된다는 자장면을 시키고는 5분도 안돼서 빨리 달라고 보챘다. 참다못한 주인 말이 『우리 살람 빨리 빨리 싫어해 이민 와써 해. 그런데 또 빨리 빨리해? 나 안 팔아해, 나가해.』 우스개 소리지만 우리 국민성을 단편적으로 잘 보여준다.
빨리 빨리 기질 때문에 우리는 차분히 계획하는 것보다는 일을 먼저 시작하는 것이 직성에 맞는다고 한다. 컴퓨터도입 초창기에 우리나라와 미국의 시스템 개발 생산성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프로그램 작성에서는 우리나라가 단연 앞서지만 프로젝트 전체의 생산성은 30∼40% 떨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시스템 설계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적당히, 그리고 급하게 프로그램을 작성했기 때문에 설계가 부실해 개발 도중 빈번히 설계를 고치고 프로그램을 다시 작성해야 하는 일이 자주 있어 결과적으로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것이 흠이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이같은 속전속결이 오히려 더 유리할 수 있다. 빠르게 변하는 시장과 기술에 적절히 부응할 수 있고 기업의 의사결정도 외부의 변화 속도에 맞추어 신속히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선 글로벌 기업들이 조직의 관리자층을 줄여 말단 직원에서 최고경영자까지 결재과정을 3단계가 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도 빠른 의사결정을 위한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국내회사에는 모든 회의실에 의자가 없다. 회의가 필요없이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 회사 구성원들이 모두 한국 사람들이어서 불평 한마디 없다고 한다. 급한 성격을 가진 우리에게 잘 맞는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프로젝트의 기간이 대폭 단축되었다. 과거에는 1∼2년씩 걸리던 프로젝트가 이제는 3∼6개월 안에 끝난다. 예전에 1∼2년이 지금은 1∼2웹이어(웹이어는 3개월)로 된 것이다. 시장과 기술이 급변하기 때문에 시스템 개발 기간이 길면 길수록 불리하다. 그래서 빨리 판단하고 빨리 개발해야 한다. 얼마 전에 인터넷 경매 사이트를 운영해 보았다. 3개월만에 개발을 끝내고 오픈한 후 한달 동안 프로그램을 10번 정도 수정했다. 대부분의 웹사이트는 고객의 성향에 따라서 수시로 변경된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프로젝트는 완성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어쩌면 모두가 파일럿 프로젝트고 계속 수정되고 보완되어 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회사들이 디지털 시대라는 커다란 흐름에 따라 유행처럼 홈페이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당한 경비를 들여 홈페이지를 구축하고는 더 이상 투자하지 않아서 아무도 찾지 않는 사이트가 되어 버리는 곳이 한두 업체가 아니다. 기업의 얼굴인 홈페이지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고객들이 꾸준히 찾아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가꾸어 가는 데 있다. 시장의 빠른 변화를 수용해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변화하는 고객과 시장의 성향에 맞추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우리 성미에 잘 맞는다.
이제는 빨리 끝내고 수시로 손질해야 하는 디지털 시대다. 마무리만 좀 더 신경을 써서 잘 한다면 우리의 「빨리 빨리」 국민성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가 올 것이다. 「빨리 빨리」를 살려서 디지털 강국을 만들자.
김형회 (주)바이텍씨스템 회장(hhkim@bite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