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경영학자인 50대 아버지와 공학도인 20대 아들이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 했다.
경기고·서울대 선후배로 또 부자지간인 서강대 경영학과 지용희 교수(57)와 벤처기업 엔버스터(http://www.nbuster.com) 지원준 사장(24)의 대화 주제는 단연 벤처기업이었다.
현재 서강대 창업보육센터장으로 15개 입주기업의 성공신화 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아버지와 신생 벤처기업의 최고경영자인 아들은 벤처기업을 주제로 30년 세대차를 넘나들었다.
벤처기업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 이야기로 시작된 대화는 아버지가 말문을 여는 것으로 시작됐다.
지 교수는 『벤처기업은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가 최대 자산이 되는 기업』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이어 『벤처기업에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은 올바른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경영학을 전공한 학자다운 정의다.
이에대해 지 사장은 『벤처기업은 꿈을 현실로 구현하려는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이라고 소개했다. 다소 거칠지만 패기넘치는 정의다.
벤처기업을 정의하는 데는 노련함과 젊음으로 다소 차이를 보였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곧 이구동성으로 『꿈과 열정이 없는 벤처에서 올바른 기업가 정신을 기대할 수 없다』며 의견일치를 보았다.
지 교수는 『경제학과 경영학이 지난 150년 동안 연구한 결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기업가 정신이 기업 성공의 제일 요건』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에 재학 중인 아들이 벤처창업을 발표했을 때 지 교수는 극구 만류했다.
지 교수는 『학업을 마치고 시작하라』고 반대하며 『좀 더 많은 지식을 축적하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해도 늦지 않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아들이 공부보다 일이 더 재미있다고 우기는 데는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없다」는 속담 그대로다.
이에 대해 지 사장은 『성공할 수 있을 것같은 자신감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역했다』고 말했다.
최근 사회문제로 대두됐던 일부 벤처기업의 도덕적 해이 현상에 대한 진단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현격한 세대차를 보여줬다.
지 교수는 『문제가 됐던 일부 벤처기업인들은 벤처기업가가 아니다』고 잘라말하며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벤처기업은 일시적 성공이 가능할 지는 몰라도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 교수의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아들에 대한 당부이기도 하다.
벤처기업가라면 항상 원리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 교수는 『구성원들이 최대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폭넓은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리더십을 갖춘 기업인이 되어야 한다』고 아들에게 당부했다.
결국 지 교수는 벤처기업의 도덕적 해이 현상의 원인을 벤처기업 내부에서 찾았다.
반면 지 사장은 『도덕적 해이는 일부 벤처기업 뿐』이라며 『벤처 생태계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집단은 벤처캐피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기술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벤처기업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라며 『이들이 사회적 문제를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즉 지 사장은 아버지와 달리 벤처기업 외부에서 원인을 찾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벤처기업의 미래에 대한 논의로 말머리를 돌렸다.
지 교수는 『서강대 창업보육센터 15개 입주기업의 지난해 총 매출액이 5억원에 불과했지만 1년 사이 55억원으로 비약적으로 성공했다』며 『지식과 정보가 경쟁력의 핵심인 경제체제에서는 창의성과 민첩성·유연성을 갖춘 벤처기업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진단했다.
지 사장 역시 『창업한 지 불과 7개월만에 회원을 37만명이나 확보했다』며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회원을 확보하고 거액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던 것은 벤처기업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연성과 창의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가진 벤처기업만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공감했다.
지 교수가 대학 창업보육센터장으로 얻은 경험과 노하우가 신생 벤처기업 대표인 아들에게 어떤 식으로 도움 혹은 전달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은 상반된 입장이다.
지 교수는 『경영에 대한 제반사항은 물론 조직생활·법률 등 모든 사항에 대해 무료 컨설팅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지 사장은 『회사 운영에 아버지가 참여하지는 않지만 든든한 후원자로 자리잡고 계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있다』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젊은 벤처기업가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부자는 새로운 벤처성공 신화를 창출하자며 각자의 직장으로 향했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
지용희
△43년 서울 출생
△65년 서울대 상대 졸업
△67년 미국 버클리대 경영학 석사
△79년 워싱턴대 경영학 박사
△76년∼현재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97∼98년 서강대 경영학과장
△98년 대통령직속 중소기업특별위원회 위원
△99년∼현재 한국벤처포럼 대표
△2000년∼현재 서강 창업보육센터장
지원준
△77년 서울 출생
△93∼95년 경기고 전산반
△97년 서울대 전기공학부 입학
△2000년 서울대 전기공학부 휴학
△2000년 엔버스터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