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e코리아]사이버시대의 반문화

공식사이트의 그림자인 앤티사이트. 기존 사이트들을 반대하는 앤티사이트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야후코리아(http://www.yahoo.co.kr)에 103개의 앤티사이트, 네이버(http://www.naver.com)에 102개의 앤티사이트, 드림위즈(http://www.dreamwiz.com)에 120개의 앤티사이트.

사이트를 서핑해보면 앤티사이트의 범람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사이트의 수도 수지만 정치·사회·기업·연예 등에 걸친 다양한 분야가 놀랍다.

특정 인물이나 기업, 단체에 대한 공식 사이트가 있으면 그에 대한 앤티사이트가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앤티사이트의 형태는 백지영의 그것처럼 상대방을 비난하는 유형.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 선수 등 소위 유명인에 대한 비난과 험담, 숨겨진 뒷이야기가 그 것이다. 심지어는 국가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에 대한 앤티사이트인 「안티 DJ」도 눈에 띈다.

여기에는 김대중 대통령 정부가 추진중인 경제 및 대북 정책에 관한 찬반투표, 게시판, 투고란이 게재돼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되지 않도록 네티즌의 진정한 참여를 바란다」는 운영자의 공지사항이 선명하지만 이 사이트 역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이나 욕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간혹 정책적인 비판이 비난 일변도를 보완하지만 사이트 히트수 12만명에게 이런 내용이 노출됐을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재삼 실감할 수 있다.

접속 네티즌 30만명에 육박하는 유명 10대 가수 HOT의 앤티사이트, 히트수 45만명에 달하는 서태지의 앤티사이트도 예외가 아니다.

HOT는 지난해말 음주운전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서태지는 은퇴를 번복하고 국적 불명의 하드코어 록으로 컴백한 데 대해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었다. 앤티 서태지 사이트는 『일본류의 창의성 없는 울트라맨이야의 우화적 광기가 새로운 변모인가』라며 서태지는 『영웅도 성자도 아니다』라고 꼬집는다.

소위 「상대방 죽이기」식의 앤티사이트를 넘나들면서 현재 인터넷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앤티문화의 속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우리의 앤티문화란 결국 일방적인 비난으로 상대를 폄하하는 것인가. 자신과 다르면 무조건적이 되는 배제와 거부의 문화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을 단련해 상대를 제압하려 하지 않고 상대방을 흠집내서 이기려는 우회 전술이다. 결과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앤티사이트에서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좋고 싫음에 따라 주류가 비주류가 되고 비주류가 주류로 둔갑한다.

비난이 아닌 비판이 존재하는 앤티 사이버 문화는 없는가. 기업이나 단체에 대해 반대하는 사이트가 어느 정도 이같은 책임을 의식하는 앤티사이트로 볼 수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대한 앤티사이트는 마치 바늘과 실처럼 공식 사이트와 함께 공존한다. 앤티 ADSL, 앤티 두루넷, 앤티 나우누리 등 인터넷 접속과 관련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에 대한 앤티사이트가 유독 많다. 네티즌의 관심을 반증하는 결과다.

이들 사이트는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가입자를 확보한 뒤 실제 접속속도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내용을 담은 것으로 소비자들의 주권을 거칠게 내뱉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이트는 비난 일변도의 여느 앤티사이트와 달리 피해사례를 접수, 참여연대 등의 시민단체와 함께 시민운동으로 확대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대기업 앤티사이트로 「노(NO) 시리즈」인 「NO 삼성」 「NO 현대」 「NO SK」 「NO LG」 등이 대기업의 횡포를 고발하는 전형적인 사이버 앤티사이트.

『기업의 일차적 목표가 이윤추구에 있음을 우리는 부인하지 않는다』면서도 『탐욕적인 이윤추구만 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NO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들 사이트에는 기존의 신문과 방송을 통해 보도되지 않은 피해사례가 여과없이 떠돌아 다닌다.

NO 삼성의 자매 사이트인 스톱 삼성에는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 후계구도를 재벌의 불법적인 세습이라고 규정짓고 형사고발 운동을 벌인다. 이들은 민주노총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대학 교수 등으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를 통해 조직적인 고발운동을 전개한다.

NO 현대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소비자 고발운동 중심이다. 이 사이트는 자동차 결함에 대한 소비자 고발운동을 전개, 2∼3차례의 리콜을 성사시킬 정도로 소비자의 힘을 발휘했다. 『이곳을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의 몫』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사이버 소비자 운동의 전형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NO SK 또한 017 요금제와 SK의 넷츠고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을 적나라하게 반영한다. 골리앗을 넘어뜨리기 위한 개미군단의 달걀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앤티사이트를 통한 소비자 운동에 대비해 기업들은 나름의 구제수단을 강구한다. LG·제일제당·삼성 등 대기업들이 많은 수의 앤티 도메인을 미리 선점했다는 소문이다. LG전자는 안티(anti) LG, 안티 LG전자 등 10여개가 넘는 앤티 도메인을 이미 확보했으며 제일제당도 안티(anti) CJ 등을 확보했다.

대기업들은 앤티 사이트의 평가들이 실제 시장에서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자 서둘러 자사의 앤티사이트가 될 만한 도메인을 선점, 사전 예방에 나선 것이다.

정보의 이용 및 교환이라는 인터넷 본래의 취지를 살린 앤티사이트도 있다. 개인 도메인으로 등록된 안티코리아(http://www.antikorea.pe.kr)는 우려·한심·불안·걱정 등의 섹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치 및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를 통렬히 꼬집는다. 예를 들면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에 대해 사용한 언어는 비록 원색적이지만 비교적 구체적인 통계와 수치로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재개편을 외친다.

미스코리아 대회의 상업성을 폭로한 앤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은 오프라인의 앤티문화를 온라인으로 확대한 경우다.

현 미스코리아 대회의 문제에 대해 조한혜정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문이 후원하고 방송사가 전국적으로 중계하는 거국적인 미스코리아 대회는 GNP 1000달러 수준의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행사』라고 비꼰다.

범람하는 앤티사이트에 대한 자정의 노력도 결국은 앤티안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잔티(http://www.yesanti.com), 안티투데이(http://www.antitoday.com), 안티100 등은 바람직한 사이버 앤티문화를 정립해 보겠다는 의도로 출발했다.

예잔티는 대한민국 앤티 연합을 자칭한다. 예잔티는 수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란 사이버 공간은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대시킬 수 있는 새로운 장이라는 주장이다. 예잔티는 지금까지 개별적으로 활동해 온 앤티사이트들은 유무형의 외압과 법률, 기술적 자료 부족으로 인해 고충을 겪었다고 판단하고 감정적인 고소, 고발보다는 좀더 논리적이고 전문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한다. 이에 법률 자문을 지원하고 웹진과 월간지를 발행함으로써 문제점을 오프라인에까지 공론화시킨다.

안티투데이는 앤티문화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지난해 9월말에 개설된 안티투데이는 사이버 언로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인터넷은 국민들의 알권리와 자유로운 발언의 공간이며 이제는 개별적인 문제들을 알리고 힘을 결집하는 단계로 이러한 활동의 일부를 앤티사이트가 담당한다는 것이다.

이제 앤티사이트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할 때다. 앤티사이트는 오늘날 민주적인 의사표현의 한 형태다. 앤티사이트의 핵심은 자유로운 「비판」과 「자정」이다. 그러나 이같은 본질을 잊고 감정적인 「비난」의 형태로 변해가는 사이트가 많다. 앤티 학교 등은 처음의 순수한 취지와는 달리 교사들에 대한 욕설이나 일부 학생들의 무분별한 감정 표현으로 퇴색했다. 모름지기 자유로운 비판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설득시키고 바로잡는 것이다. 자신의 표현 방식에 책임을 져야 하고 상대방에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상식이다.

앤티는 사이버상에 공개된 여론의 장이다. 독일 사회학자인 하버마스가 말하는 「공개의 장」에 가깝다. 기존의 제도에 대해 가상 공간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익명성 뒤에 숨은 일부 네티즌의 폭로, 비방은 지양돼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절실하다.

<김인구기자 cl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