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디스플레이업계가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였다.
상위업체 위주로 시장 질서가 재편되기 시작하면서 하위업체들은 새롭게 탈바꿈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2001년 세계 디스플레이업계의 최대 이슈가 될 업계 재편의 배경과 방향, 그리고 국내 업체의 전략을 3회에 걸쳐 조망한다.
세계 디스플레이업계는 며칠 안으로 다가온 2001년이 두렵다. 업계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해가 될 게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진앙지는 LG와 필립스다. 두 회사는 지난해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에서 합작한 데 이어 올해에는 브라운관에도 합작을 선언했다.
두 회사는 나아가 플라즈마디스플레이(PDP), 유기EL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에도 협력을 강화하고 관련 부품사업도 공동 추진키로 했다.
디스플레이업계에 거대 공룡기업이 잇따라 탄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 디스플레이업계는 일파만파의 파도에 휩싸이게 됐다.
먼저 브라운관과 TFT LCD시장을 장악한 삼성은 LG와 필립스라는 강력한 도전자를 맞이하게 됐다.
삼성SDI가 일본 NEC와 유기EL에 대한 합작에 들어간 것은 디스플레이 패권에 도전하는 LG와 필립스에 대한 견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주로 일본과 대만업체들인 3위권 이하 디스플레이업체들은 상위 업체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면서 냉혹한 생존경쟁에 내몰리게 됐다.
대만의 중화영관, 일본의 소니, 프랑스의 톰슨 등 브라운관업체들은 느닷없는 LG와 필립스의 합작으로 군소업체로 전락하게 됐다.
삼성전자와 LG필립스LCD를 제외한 TFT LCD업체들의 사정은 더욱 궁색하다. 1, 2위 업체의 득세에다 올들어 연이은 가격 폭락으로 이들 3위 이하 업체들은 가장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벌써 일본 TFT LCD업체들은 대형 화면에 대한 설비투자를 전면 중단한 채 대만 업체에 대한 위탁생산으로 돌아서고 있다.
또 일부 업체들은 합작을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메모리반도체에 합작한 일본 NEC와 히타치가 TFT LCD에서도 합작을 모색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관측했다.
대만의 TFT LCD업체들도 진입 첫해 10% 이상의 점유율(디스플레이서치 추정치)을 기록했음에도 불구, 폭락한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 업체와의 제휴를 강화하는 것은 물론 자국 또는 중국 업체와의 합작도 신중히 검토중이다.
다른 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순탄하게 성장한 디스플레이업계가 왜 이처럼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노출됐는가. 업계 전문가들은 최근 급격히 달라진 시장 환경에서 실마리를 찾고 있다.
브라운관 산업은 인터넷의 보급 확산에 따른 모니터용 브라운관(CDT)수요가 크게 늘어났으나 다른 한켠으로는 TFT LCD의 경쟁제품의 급성장과 기존 컬러TV용 브라운관(CPT)의 보급 정체 등에 직면했다.
디지털TV와 같은 돌파구도 남아 있으나 점차 PDP와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급격히 넘어갈 전망이다. 앞으로 10년 가까이 시장 자체는 성장하겠으나 미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는 게 브라운관업계의 고민이다.
불투명한 시장 전망과 달리 투자비는 갈수록 커졌다. 막대한 투자를 개별 업체 홀로 감당하기가 힘들어졌다. 합작은 이미 대세로 굳어졌다.
TFT LCD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생산업체가 늘어나면서 가격은 하락했다. 그 혜택은 일부 상위 업체들만이 누리고 있다.
상위 업체들은 이미 투자비를 뽑은 상태에서 가격 하락으로 인한 부담이 덜한 데다 가격 하락은 모니터, 디지털TV 등 신규 수요를 불러와 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반면 하위 업체들은 가격은 가격대로 내려가고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신규 시장 개척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부익부 빈익빈」이 하위 TFT LCD업체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2001년에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상위 업체들까지 매출 성장 폭을 줄일 정도니 하위 업체들은 더욱 피곤한 해가 될 게 뻔하다.
올해까지는 상위 업체들끼리 합종연횡했으나 내년에는 하위 업체로 확산될 전망이다.
어제의 경쟁자라 해도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어느 업체와 어떻게 제휴할 것인가」 세계 디스플레이업체들은 아무래도 들뜨게 마련인 세밑을 잊은 채 불투명한 경영 환경을 타개하기 위한 장고에 들어갔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