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매출 1000억원 안팎의 중견기업들에 특별한 해로 기록됐다.
한때 IMF로 초유의 어려움을 겪었던 중견기업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삼영전자공업이 전자부품 전문업체로는 처음으로 2000억원 매출시대를 연 것을 비롯해 삼화전기·삼화콘덴서·우영·한국단자공업·이랜텍·페타시스 등 1000억원대의 매출을 훌쩍 뛰어넘은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특히 이들은 수십억원의 순익을 올려 외형 못지않게 알찬 경영을 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PCB업체인 페타시스는 96년 233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지난해 8배 정도 늘어난 1850억원에 이르러 눈길을 끌었다.
이밖에 필름콘덴서업체인 필코전자, 수정디바이스업체인 써니전자, 스피커업체인 에스텍, SMPS업체인 동아일렉콤·파워넷 등도 매출 500억원을 상회하면서 1000억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이 부실·방만경영, 경영환경 악화 등 대내외적인 악재로 악전고투하는 반면 중견기업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튼실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 것이다.
주식시장 침체, 물가·환율 불안정, 벤처시장 붕괴 등으로 내년 경기를 우려하는 가운데에도 이들 중견기업은 올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필름콘덴서업체인 필코전자의 조종대 사장은 『전자 및 부품 분야는 국내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몇 안되는 분야 중 하나』라며 『필코전자가 조만간 세계 5대 콘덴서업체로 부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중견기업들의 이같은 자신감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기술력과 시장지배력에서 비롯된다.
실제 KMW가 최근 선보인 3차원 빔제어 안테나, 우영이 지난해 개발한 플라즈마 백라이트 등은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제품이다. 이 회사 관계자들은 『올해부터 이 제품들을 상용화해 단품 하나로 매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또 삼화전자는 지난 10월 송원페라이트를 인수, DY코어와 FBT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각각 35%와 25%에 이르러 일본 TDK에 이어 세계 2위 업체로 발돋움하면서 전세계 코어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부상했다. 우영도 최근 기초공사가 시작된 평택공장의 신규 조립동이 올해 1분기 완공되면 연산 6억대의 세계 최대 백라이트 설비를 확보하게 된다.
중견기업들은 지난해 이룬 괄목할 만한 성과를 바탕으로 올해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해 수출비중을 매출의 50% 이상으로 늘려 세계적인 기업으로 자리잡는다는 목표다.
코어업체인 삼화전자는 정보통신용 코어를 주력제품으로 육성하고 이를 유럽·동남아·일본 등지로 수출해 수출규모를 100억원대에서 500억원대로 대폭 늘리기로 했고 한국코어도 미국 현지공장을 세워 모터용 적층 코어를 생산키 위해 논의를 진행중이다. PCB업체인 대덕전자와 페타시스도 각각 수출 다변화와 지난해말 설립한 미국 현지법인을 발판으로 수출비중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또 반도체 장비업체인 미래산업과 주성엔지니어링도 현지법인과 차세대 고속·고집적 반도체 공정 및 300㎜ 웨이퍼 양산 공정을 무기로 수출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중견기업들은 올해 수출다변화 등 공격적인 경영에 나서기로 하고 매출도 지난해보다 크게 늘려잡았다.
삼화전자·우영·페타시스가 각각 2100억원, 2800억원, 2500억원으로 2000억원대 이상의 매출을 목표로 책정했으며 미래산업도 대외적으로는 1700억원대의 매출을 책정했으나 2000억원 이상의 실적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한국코어와 KMW가 각각 1500억원대의 매출을, 주성엔지니어링이 1000억원의 매출목표를 세워놓았다.
중견기업들이 다소 무리한 것처럼 보이는 매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까지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신제품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출시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연구개발과 관련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써니전자의 자금업무를 담당하는 박수병 차장은 『일본의 경우 한해 수백억원의 투자를 단행할 수 있는 전문 부품업체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며 『국내 중견기업들의 경우 20억∼30억원 이상의 투자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이나 구미·대만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중국·동남아 등 후발국가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이들의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저가공세를 취하고 있어 더 이상 가격만으로는 버티기 어렵게 됐다는 점도 우려된다.
관련업계에서는 이같은 난관극복을 위해 우선적으로 끊임없는 재투자와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만 세계적으로 급변하는 전자산업 환경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도 중요할 것으로 지적하고 있다.
우영 박기점 사장은 『커넥터업계의 경우 생산구조가 재편되고 있어 어제의 경쟁사가 오늘의 협력사로 바뀌고 있다』며 『우영도 세계적인 커넥터업체들과 협력관계를 강화해 이에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지난해 AMP와 인도에 합작사를 설립한 이랜텍 이세용 사장도 『AMP와의 제휴는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도 우수한 기업과의 다양한 제휴를 통해 시장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업계에서는 중견기업들의 공격적인 사업계획이 대성공을 거두어 이들이 국내 경기를 부양하는 견인차역을 톡톡히 수행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황도연기자 dy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