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e코리아]2010년의 대덕 밸리

Y(35)는 대덕밸리 벤처기업협의회가 출자해 만든 대덕하이텍의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다.

지난해까지 5세대 이동통신 단말기 원천기술 개발 계획을 주도한 Y는 올해 상용화 작업에 들어간다. 이번 프로젝트는 정부의 정책 가이드라인 속에서 대덕하이텍의 자체 잉여금과 시장조사, 연구인력으로 추진된다.

오늘은 2010년 5월 1일. Y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다. 시험 생산한 초고주파(RF), 베이스밴드 프로세서, 멀티미디어, 디지털신호처리 통합모뎀 칩의 양산을 앞두고 품질 테스트에 들어가야 한다.

Y는 출근 전 대강의 테스트 일정을 동료 연구원과 중앙연구소 위원회에 영상 메일로 통보한 다음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대덕밸리 구내 조깅을 다녀왔다. 5년 전 둔산 행정·주거단지, 유성 오락단지 및 대덕밸리를 가로지르는 수목원이 조성된 후 구내는 녹색지대가 눈에 띄게 늘었다. 밤샘 작업 일쑤인 연구원 생활에 새벽 공기는 활력소다.

Y가 전기자동차를 차고 네트워크 회의실로 출근한 시각은 아침 9시. 집에 갖춰진 영상회의용 콘솔을 통해서도 회의는 가능하지만 동료들도 만날 겸 회의장을 찾았다.

준비된 테스트 일정에 따라 전세계 거래선에 시제품 발송. 시제품 설계 디자인을 암호로 디코딩해서 전세계 거래선에 발송하면 거래선은 이를 버추얼 인코더를 통해 마치 실제 시제품같이 테스트할 수 있다. 여기에 걸리는 시간은 불과 30여분. 시제품 설계를 보내고 커피 한 잔을 하면 어느새 판정 여부가 개인 모니터에 올라온다. 50개 거래선 테스트에서 41개 합격, 15개 업체 구매 의사 표명. 국가별 소프트웨어 호환상의 문제로 9개가 불합격됐다.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Y는 이 결과를 곧바로 중앙연구소와 대덕밸리 외곽의 생산단지에 전달한다. 원인은 임베디드 소프트웨어의 호환 결함.

반송된 원인을 홀로그래픽 모니터에 띄우고 연구원들과 수정작업에 들어간다. 물론 이는 중앙연구소와 생산단지에서 모니터링된다.

오전 업무로 시제품 1차 테스트를 마친 Y는 내일 일정을 정한 후 집으로 돌아간다. 연말연휴를 맞아 엑스포 과학공원의 3차원 게임센터에 가기로 한 딸과의 약속 때문이다.

아예 Y는 가족과 함께 나머지 오후를 보내기로 정했다. 5세대 단말기 시제품 개발에서 미국의 경쟁사보다 2년 앞서 있다는 자부심이 여유를 부리게 만든다. 게임센터에 들렀다가 밀레니엄 아쿠아리움에서 열대양관 탐험잠수함을 탔다. 저녁식사는 2년 전 새로 입주한 비즈니스센터 겸 레저빌딩인 대덕인터내셔널호텔 54층 라운지에서 가졌다.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되는 듯해 모처럼 대덕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는 대덕밸리의 미래이자 21세기 디지털산업단지의 모습이다. 결코 멀지 않은 미래에 산업단지는 이렇게 변할 것이다. 국내에서 디지털 종합산업단지에 가장 근접한 곳이 바로 대덕밸리다.

첨단 연구인력의 양성·개발에서 생산·마케팅·컨설팅이 하나의 단지에서 이뤄지는 산업구조, 또 이를 지원하는 주거환경과 레저시설이 한곳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타운십(Township) 개념이다. 또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정부 주도형의 구조 고도화 계획이라면 대덕은 지역적이고 자생적이다. 프랑스 니스 인근의 앙티폴리스와 같은 선진국형 산업단지에 가깝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삶의 질에 관한 욕구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이는 산업단지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김정호 수석은 「대만의 신주 과학단지」를 예로 들어 디지털산업단지의 모델을 제시한다.

비즈니스·레크리에이션·거주 지역으로 구분되는 대만 신주단지는 단지 내 설비 면에서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만큼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타운십을 이룬 첨단산업단지, 이것이 21세기 디지털산업단지의 모델이다.

<김인구 기자 cl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