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코리아를 조기에 구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여기에 맞는 법과 제도의 체계 개선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전자상거래를 디지털 경제대국, 즉 e코리아의 전략축으로 설정하고 오랫동안 활성화를 외쳐왔지만 각종 규제와 열악한 정부지원, 법적인 걸림돌 등으로 현실은 아직 척박하다.
국내 대표적 사이버 쇼핑몰 업체 인터파크는 얼마전 사무실을 이전하면서 신고를 하지 않아 검찰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이유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이전시 시·도지사에 신고해야 하는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다.
사이버 와인숍을 준비하던 모 업체는 주세법과 국세청 고시에 발목을 잡혀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와인을 팔려던 꿈을 접었다. 청소년 보호와 탈세 방지를 위해 인터넷에선 포도주를 판매할 수 없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활성화의 필요충분조건인 금융·세제시스템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전자상거래의 기본인 신용카드 결제가 어려운 것이 가장 큰 문제. 신용카드사가 소비자 서명이나 확인 없이 카드번호만을 통한 거래를 꺼리는데다 특약시에도 수수료가 5%선으로 약 3%인 일반카드보다 높다.
국제간 결제시스템이 취약해 전세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판매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은행과 외국은행간에 아직 상호인증이 안돼 있어 해외결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처럼 정부정책과 관련한 업계 관계자들의 볼멘소리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전자상거래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정부부처간 치열한 주도권 다툼도 관련업체들이 겪는 어려움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는 같은 날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에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통보, 관련업체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정통부는 「인터넷 모범상점 인증제」, 산자부는 「우수 사이버몰 시상제도」 등 비슷한 제도를 기획해 업체들은 『어디에 줄을 서야 할지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또 전자화폐 전문업체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지만 관련 법규가 정비되지 않아 전자화폐는 금융상품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대표적인 온라인 전자화폐 업체들은 종목을 인터넷서비스, SW개발·보급사업으로 각각 등록해 사업목적만으로는 전자화폐 회사임을 분간하기 어렵다. 이유는 「여신전문금융업법」상에 신용카드사업자의 선불카드 발행규정만 명시돼 있을 뿐 신종 상품인 전자화폐 관련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전자화폐 사용과 관련해서도 법규와 제도, 약관 등의 제정이 시급하다는 게 중론이다. 전자화폐사업이 소비자에게 미리 돈을 받고 화폐를 발급하는 금융기관의 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관련업체 설립이나 사업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근거법규나 기관은 지정돼 있지 않다.
또 사업자의 폐업이나 도산시 잔액을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고 사업자와 이용자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하는 약관도 사업자마다 제각각 내용이 달라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표준약관의 제정이 시급하다. 이처럼 인터넷시대로 들어서면서 현재 경제분야별로 상충되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조세 =전자상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세제혜택은 정부가 제공하는 「당근」이다. 하지만 지난해 산업자원부와 재정경제부가 밝힌 조세특례제한법은 업계 관계자들의 환영을 받기는커녕 외면만 당했다. 세제지원대상이 전자상거래 자체가 아닌 전자상거래 환경구축으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근간을 이루는 유통·물류환경은 소관부처나 산업별로 제각각 관리됨으로써 가장 기본적인 정보환경구축조차 막막한 실정이다. 상품코드표준화 등 전자상거래의 전제조건이 마련되지 않은데다 공동물류체계 구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물류·유통 =정부가 전자상거래 물류 육성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관련법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품종류와 업종, 산업별로 소관부처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농축산물의 경우 농업농촌기본법, 수산물은 수산물포장 및 용기에 관한 규칙, 항만물류는 항만법, 시설관련 규정은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 통관은 관세법, 국내 물류의 경우 화물유통촉진법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로 인해 전자상거래 공동물류 기반조성의 전제조건인 정보표준화가 요원하다. 유통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의약품만이 국제표준바코드(EAN)를 쓰도록 개정약사법 시행규칙내에 의무화하고 있을 뿐 대부분 상품의 표준코드채택률은 매우 저조하다.
△저작권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디지털 콘텐츠가 유통되는 시대가 열리면서 저작권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저작권은 특히 저작자, 온라인사업자, 관련단체, 개별국가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때 해결이 쉽지 않은 현안이다. 더욱이 현행 관련 법규는 저작물의 권리사항을 포괄적으로 명시한 저작권법이 이같은 쟁점들에 거의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대외무역 =지난해 개정된 대외무역법은 사이버 무역환경 조성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다. 디지털 콘텐츠상품의 무역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조항이 추가됐을 뿐 전자무역 중개기관의 인증서비스가 아예 빠졌다. 이는 산자부와 정통부가 전자서명법을 놓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을 벌인 탓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위원장인 한나라당 이상희 의원은 『정부가 전자상거래 환경에 맞는 법과 제도를 하루빨리 정비해야 한다』며 『우선 조세감면이나 부가세 유예제도 등을 시행해 기업들에 전자상거래에 참여하려는 의지를 북돋워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또 『전자상거래 업체를 벤처기업으로 인정, 투자자금 유입을 원활히 해주고 전자상거래의 조기정착을 위해 국민의 정보화 마인드를 높이는 일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e코리아는 그에 맞는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며 『이제부터라도 관련업체나 사용자들이 법과 제도라는 테두리에서 자유럽게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부터 하나하나 뜯어 고쳐나가야 한다』고 입
을 모으고 있다.
<김원배기자 adolf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