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업계 구조조정>하-국내 업체의 선택

세계 디스플레이업체들은 다가올 구조조정 파도를 걱정하고 있으나 국내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한 입장이다. 업계 정상에 서 있어 유리한 데다 한발 앞서 구조조정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내 업체의 경쟁력은 현 디스플레이시장에선 유효하나 차세대 디스플레이시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때문에 차세대 시장에 대한 연구개발과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또 상위권 업체와 달리 오리온전기·현대전자 등 업계 중하위권에 포진한 업체들은 세계적으로 이뤄지는 구조조정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이들 회사는 일단 시장에서 퇴출되지 않도록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해외 업체와의 제휴나 투자유치를 통해 탈출구를 찾는다는 전략이다.

디스플레이산업의 양대 축인 브라운관과 TFT LCD시장을 장악한 삼성은 내년에 상황이 급변할 것으로 보고 내부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합작사인 LG필립스디스플레이의 등장으로 브라운관 1위를 내주게 된 삼성SDI는 브라운관사업 구조를 한층 고도화하는 한편 NEC와 유기EL분야에서 합작해 리더십을 차세대 분야로 옮겨가고 있다.

TFF LCD의 가격하락으로 예전과 같은 호황을 기대하지 않고 있는 삼성전자는 원가 혁신과 5세대 투자를 양날개로 삼아 내년에도 부동의 1위를 지켜갈 방침이다.

김순택 삼성SDI 사장은 『디지털화의 급진전으로 디스플레이업계 재편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나 우리는 이미 질적 경쟁으로 전환해 브라운관사업에서 큰 타격은 없으며 PDP와 컬러 STNLCD, 유기EL 등의 신규 사업을 적극 추진해 디스플레이 최강자로 남겠다』고 말했다.

TFT LCD에 이어 브라운관에서도 필립스와 합작한 LG는 삼성을 제치고 디스플레이업계 초강자의 자리에 오른다는 목표 아래 매진하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필립스와의 합작사 출범에 대비해 브라운관 및 PDP 사업을 CRT/PDP사업본부로 분리했으며 생산능력 1위에 걸맞은 사업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LG필립스LCD는 격화될 TFT LCD시장 경쟁에 대응해 점유율 1위인 모니터용 시장을 발판으로 신규 시장을 적극 개척, 삼성전자와 함께 시장을 선도한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는 특히 5세대 선행 투자로 내심 2002년 이후 1위에 오른다는 방침이다.

현대전자는 국내 경쟁사에 비해 취약한 LCD사업구조를 개선키로 하고 최근 반도체부문과 통합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또 투자가 필요한 이 사업의 특성을 고려해 해외 자본을 적극 유치한다는 방침이다.

오리온전기 역시 올해는 결국 실패했으나 내년에도 브라운관과 PDP 사업의 해외 매각을 추진하는 한편 해외 업체와의 합작을 적극 검토중이다.

국내 업체끼리 합병이나 합작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으나 업계 관계자들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으로 본다.

다만 불투명한 내년 시황에서 원가 혁신은 모든 업체가 직면한 문제여서 부품공용화나 차세대 기술개발 등과 같은 국내 업체간 공조는 내년에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한편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의 새로운 기대주로 떠오른 벤처기업들의 행보도 관심거리다. 주로 PDP나 유기EL 등 차세대 분야에 집중된 이들 벤처기업은 내년의 시장침체에다 자금경색으로 피기도 전에 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이에따라 이들 벤처 디스플레이업체는 동종 업체와의 제휴를 통해 국내외 대형 디스플레이업체와의 합작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관측됐다.

한 벤처기업 관계자는 『외국 업체보다는 국내 업체와 힘을 합치는 게 국내 디스플레이산업 발전 측면에서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해 합작 등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내비쳤다.

세계 디스플레이산업이 급격하게 재편되는 상황에서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의 역할론이 재삼 제기됐다.

산업자원부·과학기술부 등 정책 당국들은 국내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산업에 대해 높은 관심을 기울이나 상대적으로 디스플레이산업의 육성에는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국내 디스플레이산업의 경쟁력 및 잠재력은 오히려 반도체산업보다 높다』면서 『장비 등의 높은 관세 문제나 부품·소재·장비 등 연관 산업의 육성에 정부가 적극 힘써줄 것』을 주문했다.

이에대해 산업자원부는 『내년부터 관세문제를 순차적으로 해결해나갈 계획이며 연관산업에 대해서도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세계 디스플레이산업의 재편은 국내 업계에 「약」 될지, 「독」이 될지 가늠하기 힘드나 일단 자체 경쟁력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했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어떠한 비전을 갖고 어떤 행보를 택할 것인지 국내 업계뿐만 아니라 해외 업계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