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세계 경제를 이끄는 원동력인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세금을 면제해주자(미국).」 「말도 안되는 소리다. 세금을 부과하는 데 온오프라인을 구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EU).」
최근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는 전자상거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고 전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지면서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대해 세금부과 문제를 둘러싸고 면세를 주장하는 미국과 이에 반발하는 유럽연합(EU)사이의 갈등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그 동안 수면 아래에 잠복해있던 인터넷 세금부과 문제가 표면화된 것은 지난해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국제 전자상거래와 관련해 세금을 부과할 때 통일기준을 적용하도록 하는 「과세징수 권고방침」을 마련하면서부터다.
OECD 권고내용은 사업자가 인터넷을 통해 음악·영화·게임 등을 외국 소비자에게 공급하고 소비자가 이를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내려받아 구입하는 거래에 대해 국제적으로 통일된 과세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때 부과하는 세금은 소비세·부가가치세·판매세 등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21세기 최첨단 산업인 인터넷관련 분야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명분과 무역불균형 등 국가간 이해가 맞물려 좀처럼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OECD 가맹국 중에서도 EU는 과세문제에 적극적이고 일본·한국 등은 관망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반면 미국내에서는 『소프트웨어를 일반 제품과 같은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은 이미 지난 98년부터 인터넷의 잠재적인 성장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정부와 의회가 전자상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3년 동안 인터넷에서 거래되는 제품에 대해 세금을 면제해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인터넷 면세법(ITFA)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또 최근 민주·공화 양당이 전자상거래에 대한 세금면제 기간을 오는 2006년까지 5년 더 연장하기로 잠정 합의한 상태다. 클린턴 대통령과 관련부처 장관들까지 가세해 최근 정상회담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터넷에서 판매되는 제품에 대해 세금을 면제하도록 상대방을 집요하게 설득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정책방향은 전자상거래 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과 함께 세계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자국의 정보기술(IT)관련 기업들이 앞으로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있어 세금장벽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부수적인 효과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풀이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시도에 대해 미국과 전자상거래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골머리를 앓고 있는 EU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이 반발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대응으로 보인다.
특히 EU는 지난해 말 역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전자상거래에 대해 부가세를 부과하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미국과 반대되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EU집행위는 법 개정과 관련해 『전체 조세수입에서 부가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미국은 25%인 반면 유럽 각국은 평균 40%에 이르는 상황에서 전자상거래에 대한 세금면제는 있을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EU의 이같은 결정에는 미국과 역내 국가간 전자상거래를 통한 무역 불균형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고 이러한 상황은 앞으로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파이낸셜타임스(http://www.ft.com)에 따르면 지난 99년 미국 업체들은 유럽 시장에 약 7억달러에 달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인터넷을 통해 판매한 반면 유럽 업체들의 대미국 수출은 10분의 1 수준인 7000만달러에 그친 것으로 지적됐다. 미국 기업들은 또 지난해 약 35억달러로 추산되는 유럽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약 20%를 차지하는 등 양 대륙간 무역역조는 개선되기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악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EU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몰려들고 있는 미국 제품으로부터 자국 업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이들 제품에 대한 세금부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이번 법 개정을 통해 확고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도 전자상거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세청에 해당하는 중국 국가세무총국의 진런칭(金人慶) 총국장은 지난 7월 차이나데일리(http://www.chinadaily.com.cn)와 가진 인터뷰에서 『전자상거래 육성보다 세금 확보가 더 중요한 과제』라며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에도 곧 세금을 부과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일본과 한국은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면서 나름대로 과세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 대장성은 최근 기업간 거래규모가 큰 것부터 세금을 부과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외국 업자에게 거래내용을 보고하도록 요구하는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전자상거래는 아직 전체 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감안할 때 앞으로 2∼3년 안에 4%대까지 수직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는 점에서 전자상거래에 대해 면세를 고집하는 미국과 이에 반발하는 EU·중국 등 전자상거래 후발주자들 사이의 갈등도 앞으로 더욱 크게 증폭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