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1년 벽두 세계 경제무역 전쟁의 최대 화두는 기술표준이다.
정보통신과 디지털화가 격류처럼 급물살을 타고 있는 이즈음 세계 무역 전쟁은 사실상 기술전쟁의 양상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술전쟁의 승부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국제표준과 특허를 어느 나라, 어느 회사가 주도하거나 더 많이 갖고 있느냐에 좌우된다.
날로 정보화의 급진전을 보이고 있는 전세계 산업환경과 생활환경을 고려할 때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진다.
전자·정보기술(IT)분야에서 세계표준을 주도할 기술을 누가 더 많이 고안하고 이를 국제표준으로 만들어 가느냐에 달린 것이다.
이는 비단 국가간 국제표준만이 아니라 국가안의 사실상표준을 둘러싸고도 사업의 흥망을 좌우하게 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70년대 말 비디오테이프 녹화방식을 놓고 소니와 마쓰시타가 벌인 경쟁은 표준전쟁의 대명사로 회자되고 있다
VCR녹화방식을 두고 소니가 베타방식과 마쓰시타의 VHS방식이 대립한 가운데 주요 가전업체 등과 기술을 공유하고 전략적 제휴를 맺은 마쓰시타가 결국 세계시장을 주도했다. 70년대 중반만 해도 세계 시장의 85%를 장악했던 베타방식은 시장에서 사라졌다.
비록 전세계적인 디지털방송시대 개막을 앞두고 있는 마당이긴 하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이 대표적 특허전쟁은 가슴에 새길 만한 교훈을 제공한다.
외국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수출기업의 수익성이 어찌될지는 뻔하다. 우리나라가 동기식 CDMA이동전화의 종주국이면서 미국의 퀄컴에 단말기 한대마다 최소한 판매가격의 3%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지불하고 있는 것도 되새길 만한 점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난달 말 산자부가 반도체설계회사를 육성하는 정책을 내놓은 것은 시의적절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제표준 장벽의 해결은 대세
국제적 표준, 즉 공적 표준을 주도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사실 그동안 각국의 기업들간에는 자유경쟁체제하에서 시장을 선점하는 기업이 나머지 모든 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사실상의 표준(De facto Standard) 주도경쟁이 뜨거웠다.
사실상의 표준전쟁을 둘러싼 대표적 사례는 홈네트워크 표준, 차세대 고선명 DVD, 디지털TV 표준, 무선이동통신분야에서 유럽의 이른바 WAP진영과 일본 NTT도코모 진영의 i모드 중심의 웹브라우저 표준전쟁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기술의 급진전과 제품수명주기의 단축에 따라 보다 많은 사람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표준채택에 더 높은 관심을 보여야 할 시점을 맞이했다.
특히 지난 95년 발효된 세계 무역기구 무역상기술장벽협정(WTO/TBT)은 가맹국에 대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제표준을 따를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는 ISO/IEC 등 국제기구에서 기술위원회 간사국을 맡으면서 국제 표준화작업을 주도하려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간사국은 기본적으로 국제표준 제정시 각국의 의견을 가장 먼저 수렴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게다가 국제표준활동을 어느 회원국보다도 정확하게 자국기업들에 전달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진다. 자국기업들에 보다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제공하도록함으로써 기업들의 제품생산시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선진국이 ISO/IEC분야에서 후진국에 비해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간사국 수임에 보다 적극적인 것도 표준전쟁에 다름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준주도권 확보는 이미 보이지 않는 무역전쟁의 최대 쟁처(爭處)가 된 지 오래다.
◇차세대 기술표준을 주도하라
지난해 10월 23일 프랑스의 도시 라볼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전세계 20개국 400여명의 동영상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국제표준화기구(ISO) 멀티미디어 기술표준 국제총회에서 우리나라가 제안한 22개 동영상 검색저장 전송 기술이 사실상 국제표준으로 채택된 것이다.
우리는 이 회의에서 제안된 전체 MPEG7국제표준 규격의 10%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확보하면서 이 분야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날 채택된 기술들은 이른바 MPEG7기술로서 인터넷 등 온라인상에서 움직이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저장·검색·이동을 할 수 있는 기술이다
IMT2000의 상용화 한 부분만 생각해 보자. 이 시장이 성숙되는 2005년께 우리나라는 세계 10억대분의 단말기에 대한 로열티 3달러의 10%에 해당하는 30센트의 로열티로 연간 3억달러의 수익을 얻게 된다.
총성없는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드물게 개가를 올린 사례였다. 이는 비단 로열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적어도 기술표준을 확보한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로열티 협상을 할 필요가 없고 그만큼 기술개발에 전력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의 표준 주도권 쟁탈전
물론 국제적 표준화기구에 의한 공적 표준참여 움직임뿐 아니라 사실상의 표준에 대한 전쟁역시 간과할 수 없다.
대표적인 예로 최근들어 부쩍 주목받고 있는 무선통신 표준주도기술인 블루투스 표준화 움직임이다. 블루투스는 지난 98년 에릭슨, 노키아, IBM, 인텔, 도시바 등 5개사가 주축으로 결성돼 세계 무선단말기 표준으로 사실상 그 자리를 확보하고 있다.
블루투스는 근거리 10m내외에서 케이블 연결없이 통신기기간 연결을 가능케 해주는 기술표준이다. 이 기술이 올해를 기점으로 사실상 세계표준으로 정착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를 비롯해 블루투스 규격 제정 움직임에 참여하지 않은 기업들은 기술개발에 있어 자국에 유리한 규격을 중심으로 규격을 정하도록 하는데 뒤질 수밖에 없다.
이는 기술개발과 향후 제품개발 전략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제품생산과 함께 로열티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그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의 제품이 세계시장에서 어떤 경쟁력의 차이를 보일지는 뻔하게 드러난다.
결국 날로 거세지는 높은 국제교역의 파고는 국제표준의 주도권을 잡는 국가와 기업에 유리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공적표준이건 사실상의 표준이건 간에, 그리고 이는 기업과 국가가 교역을 확대하고 수출환경을 친화적으로 전환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이다.
<이재구기자 jklee 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