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계 반도체 업계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지난해 급반전을 경험한 세계 반도체 업체 경영자들은 예년과 달리 올해 경영전략을 짜는 데 고민스럽다. 지난해 그랬듯이 언제 어디서 어떤 돌발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그래도 나름대로 대비하면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법이다. 올해 반도체 업계가 관심을 갖는 변수를 이모저모 살펴봤다.◆
지난해 말 이윤우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은 인텔의 모 부사장과 회동한 후 메모리사업부문에 긴급 지시를 내렸다. 램버스 D램의 생산능력을 최대한 확보하라는 전갈이다.
인텔은 델·컴팩·IBM 등 주요 PC 업체들과 협의한 결과 펜티엄4를 탑재한 고성능 PC에 대한 수요가 기업을 중심으로 올초부터 활성화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예측이 들어맞는다면 지난해 4분기 이후 급격히 둔화됐던 PC 수요는 조기에 활성화할 전망이다.
인텔과 같은 중앙처리장치(CPU) 업체는 물론 삼성전자·현대전자와 같은 D램 업체들에도 PC 시장 동향은 늘 관심거리다. 새로운 응용기기의 등장으로 반도체 산업에서 PC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있다고는 하나 PC 시장은 여전히 주요 시장이기 때문이다.
PC 및 반도체 업계는 일단 올해 PC 시장을 낙관한다. 세계 PC 수요를 이끄는 북미 시장에서 기업용 수요가 되살아나는데다 중국 등 동남아와 중남미, 동유럽 등지에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PC 업체들은 지난해 말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20% 가까이 줄어든 수요로 인해 쌓인 재고를 올 1∼2월중으로 완전히 털고 3월부터는 신제품 위주로 영업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덩달아 2월부터 새로운 CPU와 대용량 D램에 대한 탑재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 업체들은 본격적인 시장 활성화 시점을 이때로 잡고 있다.
문제는 반도체 업체들이 이러한 시장예측을 예년처럼 확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국내 한 반도체 업체 관계자는 『PC 업체로부터 주문이 늘어나고 있으나 실제로 PC 판매가 이뤄지는 1∼2월을 거쳐야 정확한 수요를 예측할 수 있다』면서 본격적인 활황세 시점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자칫 PC 시장 활성화 시점이 2분기로 넘어갈 경우 올해 반도체 장사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걱정을 씻지 못하고 있다.
이럴 경우 PC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CPU 업체나 일부 D램 업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반년 정도 극심한 불황에 직면하게 된다. 채산성 악화로 경영난에 직면하는 기업이 나올 수 있다.
반도체 업체들이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북미 이외의 지역의 PC 시장 활성화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 지난해 3분기까지 34%의 성장률을 보였다. 지난해 4분기에 성장률이 다소 주춤했으나 전반적으로 낮은 PC 보급률을 감안하면 올초에도 20∼30% 정도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남미와 동유럽 시장도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불안정한 북미와 유럽 시장을 이들 신흥 시장이 커버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들 신흥 시장은 북미와 유럽 시장과 달리 고성능 PC보다는 범용 PC 수요가 집중될 전망이다.
CPU와 D램 반도체의 수요 역시 지역별로 양분될 가능성이 높다.
반도체 업체로서는 정확한 PC 시장 반등 시점에 맞춰 생산 일정을 다시 짜야 하는 동시에 사업의 안정성을 위해 「포트폴리오」를 잘 갖야 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부담이 생겼다.
반도체 업체 경영자들이 올초 PC 시장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