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다시 수출이다>4회-수출확대를 가로막는 걸림돌

올해 우리나라 경제의 최대 과제는 수출확대다. 대외거래 흑자는 수출증대와 수입절감으로 가능한데 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우리의 여건상 수입절감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국제통화기금(IMF) 이후 다시 불어닥친 경제위기 극복의 열쇠는 수출증대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길목 앞에는 비관세장벽 강화, 지역경제 이기주의 심화, 싸구려 디자인, 정보화기반 부족, 고물류비용 등 대·내외적인 무역환경들이 우리의 수출확대를 힘들게 하고 있다.

이처럼 수출확대의 걸림돌로 작용하는 무역환경의 파고를 헤치고 지속적으로 수출을 성장시키기 위해 우리나라는 가격경쟁력만 앞세운 기존 양적성장 위주의 수출전략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 질적성장 위주의 수출전략을 통해 우리의 무역체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영업인력 부족 =산업의 정보화가 급진전되면서 하이테크 산업의 수출입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컴퓨터·전자부품·반도체·의료기기·공작기계 등 300개 품목의 하이테크 제품의 비중은 지난 96년 16.4%(45억달러 흑자)이었으나 지난해 9월 말 현재 26.0%(111억달러 흑자)로 매년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하이테크 제품 판매를 위한 전문지식을 갖춘 영업인력이 해외 현장에서 부족하니 전문인력의 양성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과거 해외지사 영업 인력은 특별한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일반적 지식만 보유하고 있다면 TV를 잘 팔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기술(IT) 등에 대한 전문지식이 빈약하면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플레이어 한 대조차 수출하기 어려운 무역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LG상사 IT사업지원팀 김진성 팀장은 수출 주역인 대다수의 대형 종합상사들이 이같은 고민에 한결같이 빠져있다며 『외국 현장에서 전문 영업인력의 부재가 수출을 확대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시장에서 전문지식이 필요한 품목은 제껴두고 TV·냉장고·가스레인지 등과 같이 한정되고 팔기 쉬운 아이템의 판매에만 집중하다보니 새로운 바이어를 개발하고 확보하는데 한계점에 도달, 수출확대에 애로를 겪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제품질인증 정보 빈약 =이러한 시장변화에 대한 대응부족 현상은 비단 종합상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당수 기업들이 수출의 걸림돌로 수출상대국의 인증규격에 대한 정보부재를 가장 크게 꼽고 있다고 산업시험기술원은 지적했다.

수출하기 위해선 수출상대국의 품질인증을 반드시 획득해야 하는데 상당수 우리 기업들은 계획적으로 이를 추진하지 않고 있다. 해외 바이어가 요구하면 뒤늦게 인증을 획득하는 수동적인 입장이다 이러다보니 시장상황이나 시장특성에 맞는 규격정보에 대한 준비소홀로 인증획득 기간이 길어지거나 납기 일정을 넘기고 있다.

특히 제품에 대한 관련 서류와 요구 조건이 인증기관과 나라마다 많은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인증절차가 까다롭고 특히 미국·유럽의 경우 단위나 규격이 상당부분 틀리기 때문에 국내 기업이 미국 단위와 규격을 파악 또는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또 인증서를 작성할 경우 모든 문서는 영문으로 작성해야 하고 각 국가간의 문화와 습관 등의 차이로 인해 해당 외국 인증기관의 시험담당자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문서를 수차례 보완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허다해 인증획득 비용이 높아지고 인증획득 기간이 1년을 넘기기 쉽다.

산업기술시험원 외국인증팀 정영복 팀장은 『선진국에서 개발한 제품을 카피해 제조, 국내에서 판매하는데 별 애로는 없으나 이후 수출을 위해 해외인증을 추진하다 기술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수출을 포기하는 업체가 적지않다』고 말했다.

◇사이버무역 대응력 미흡 =상당수 기업들은 각종 해외정보에 어둡기도 하지만 기업의 정보화 수준도 질적으로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도 수출확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21세기는 사이버무역시대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을 통해 바이어를 발굴하고 인터넷 마케팅이 활성화돼 우리나라 무역거래중 사이버무역의 비중이 5년 후에 30.4%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21세기 초 세계교역의 30% 이상을 사이버무역의 형태를 띨 것으로 예상하는 등 전자상거래가 무역환경을 순식간에 바꿔놓고 있다.

그러나 우리 기업의 현주소는 이같은 전망과 괴리감이 크다. 최근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중소기업 333개사의 정보화실태를 조사한 결과, 지난 97년 기업내 네트워크 구축비율은 전체의 26.2%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9월 현재 53.3%에 달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초고속통신망·전용선보다는 전화모뎀으로 인터넷을 연결하는 업체가 42.4%에 달하고 펜티엄Ⅱ 이상의 보급률이 낮아 컴퓨터를 단지 워드프로세서 수준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486급 PC를 사용하는 곳도 9.0%에 달했다.

특히 31.8%의 업체만이 기업정보화 관련 담당자를 두고 있고 담당자가 있어도 절반 이상이 타업무와 겸임하고 있어 인력 부족으로 정보화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형편이다.

기업의 정보화 수준이 이처럼 질적으로 낮다보니 디지털시대에 있어 전자상거래를 통한 수출물량을 늘리기가 힘들다. 양방향·다방향 동시 통신을 통한 사이버마케팅이 가능해지고 거래알선과 정보수집이 보다 효율적으로 이뤄지기는 21세기 무역환경이 무한경쟁의 시대에 돌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응력이 뒤처지고 있다.

◇지역이기주의 심화 =같은 지역내 국가들이 뭉치는 유럽연합(EU)·북미자유시장(NAFTA) 등은 비회원국들로부터 지역경제주의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경제블록화는 21세기에도 계속 강화될 것이다. 미국·캐나다·멕시코 등이 회원국인 북미자유시장의 역내 교역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시장보호를 위해 관세동맹을 맺고 비회원국에 대한 역내진입을 저지하고 있다. 따라서 비회원국인 우리나라는 불리한 조건에 있다.

◇싸구려 디자인 =21세기 기업의 경쟁력은 역시 디자인이다. 세계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진 선진 기업들은 디자인을 경영전략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소비자는 매력적이고 새로운 디자인의 제품을 우선 찾는다. 일례로 미국 애플사는 「iMa 컴퓨터」의 독특한 디자인 덕분에 부도위기에서 벗어났다는 데서 우리는 그 교훈을 찾을 수 있다.

또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인터넷거래에서도 디자인은 구매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제품을 직접 보고 만지거나 작동해볼 수 없는 인터넷쇼핑몰에서 소비자는 디자인을 보고 구매 결정여부를 짓기 때문이다.

◇기타 =선진국들은 자국의 환경문제나 자국산업의 보호를 위해 환경기준을 강화하고 기준에 미달하는 제품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무역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또 지난해 우리나라 기업의 물류비가 매출액의 12.5%로 지난 97년의 12.9%보다 0.4%포인트 감소했지만 아직도 선진국의 2배 수준에 달하고 있고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으로 수출소요자금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 차근차근 딛고 넘어야할 걸림돌이 산적해 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

◆인터뷰-산업기술시험원 강윤관 원장

『세계무역기구(WT0) 체제의 도입으로 관세장벽은 사라졌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진국들은 「자국의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CE마크·UL마크 등 보이지 않는 비관세장벽인 품질인증의 기술장벽을 내걸고 외국산 제품의 반입을 철저하게 가로막고 있습니다.』

한국시험기술원 강윤관 원장(52)은 이같이 밝히고 우리나라가 미국·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시장에 진출, 수출을 확대하는데 있어 발목을 잡고 끈질기게 놓지 않는 것이 바로 수출상대국의 강제성을 띤 품질인증제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일례로 유럽시장에 우리기업이 한 모델을 수출해 CE마크를 획득해 현지에 유통시키기 전까지 평균 1년이란 기간이 소요되고 인증 비용은 5000만원 가량든다. 게다가 비계량적인 비용까지 감안하면 총 인증비용은 우리기업 입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강 원장은 『선진국 등이 품질인증 규격을 제정할때 초기엔 안전성만을 중요시했다면 지금은 환경친화성·신뢰성 등 새로운 기술적인 규격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규격의 범위가 확대되는 등 점점 선진국의 품질인증제를 획득하기가 까다로워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특히 선진국들이 자국의 제품을 해외시장에 최대한 내다 팔면서 상대적으로 자국내 수입은 최대한 막는 등 국가 경제전략을 수행하는 하나의 전술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인 품질인증제를 최대한 이용하고 있다.

강 원장은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을 대상으로 기술력의 우위를 앞세우면서 우수한 제품의 보급을 횡포에 가까울 정도로 밀어부치는 만큼 우리나라 기업도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기업들이 더 이상 국가의 보호아래 기업을 운영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과거 해외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외국 경쟁기업에 비해 품질은 중간 정도만 하고 가격 경쟁력만 갖고 있다면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대에 우리기업이 살 길은 가격 경쟁력과 품질경쟁력 모두를 갖춰야만 합니다.』

따라서 강 원장은 『국내 기업들이 기술개발에 대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해외 각국의 기술규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데도 게을리 해서는 안되며 정부 또한 국내 기업들이 전세계 주요 국가의 인증 신청에서부터 인증서를 수령하기까지 모든 절차를 저렴한 비용으로 지원해주는 제도의 폭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일본·대만·중국·싱가포르 등 아시아 5개국의 주요 인증기관간 상호인증 체제를 2년내 도입해 우리나라에서 인증을 획득하게 되면 나머지 아시아 국가에서도 이를 인정해줌으로써 기업들이 수출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품질인증벽을 낮추는데 일조하겠다』고 덧붙였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