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방송계는 프로그램공급업자(PP) 등록제 실시와 위성방송 시대의 개막으로 콘텐츠 산업의 황금기를 맞게 될 전망이다.
올해부터 PP 승인제가 등록제로 완화되면서 일정 규모의 자본금 등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사업자는 누구나 케이블·위성방송 등 모든 매체에 프로그램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현재 국내에서 PP사업을 준비하고 있는 업체는 줄잡아 100여개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국내 방송 콘텐츠 시장이 전체 재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지상파 방송사에 의해 점령당해 왔다는 점을 볼 때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지상파의 독과점 구조는 상대적으로 영세한 독립 프로덕션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더많이 끼쳤다. 독립 프로덕션이 독자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보다는 하청을 받아 제작하는 형태에 머물렀으며 그나마도 방송사가 판권을 독점해 해외 수출 판로까지 막혀 있었다.
방송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현재 독립 프로덕션의 제작비 투자금액은 지상파 방송사의 매출액 대비 4.4%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다양하고 전문화된 콘텐츠로 무장한 다수 PP가 등장한다는 것은 국내 영상 콘텐츠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생산유발효과 측면에서도 위성방송의 개시로 사업개시 5차 연도까지 영상정보산업 부문은 4조1739억원, 방송광고산업 부문에서는 1조639억원으로 성장할 것이 예상되고 있다.
방송업계는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이 600억원을 투입해 콘텐츠투자조합을 만들기로 한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는 그동안 지상파 방송 3사에 집중돼 있던 인력·제작설비 등을 독립 프로덕션 등 영세한 PP들에게 분산시킴으로써 질높은 콘텐츠를 양산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영국 위성방송인 BSkyB가 98년 전체 운영비용 중 63%를 프로그램 수급 관련 비용으로 지출한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또 PP들이 외주제작에 적극 나서면서 군소 프로덕션들의 할 일이 많아지는 등 보다 전문화된 고품질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신규 사업자들이 미디어센터를 공동 활용, 초기 설비 투자를 줄이는 대신 남는 여유 자금을 경쟁력있는 콘텐츠 발굴에 투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콘텐츠 산업 육성이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는 지난해 15개 신규사업자의 승인으로 현재 44개까지 늘어난 케이블PP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PP들은 해외물과 지상파 녹화 프로그램 등의 순환편성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체 제작 프로그램에는 충분한 제작비를 투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프로그램의 부실화는 가입자 기반 악화로 이어지고 이는 수신료 및 광고수입 악화를 초래해 다시 콘텐츠의 질 저하를 낳는 악순환을 계속하게 된다.
이결과 지난해 흑자를 낸 PP는 m.net을 비롯한 3∼4개 사업자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상황을 고려할 때 위성방송의 출범은 방송 콘텐츠 육성의 중대한 고비가 될 전망이다. 위성방송을 통해 콘텐츠 산업이 급팽창 할 수도 있지만 잘못 시행될 경우 과거 케이블TV의 실패를 되풀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KDB는 80∼100여개에 이르는 채널을 운영한다는 계획이지만 크게 늘어난 채널을 케이블TV와 차별화된 콘텐츠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KDB 컨소시엄에 참여한 PP 현황을 살펴보면 대교·동아TV 등 기존 PP 8개 외에 아직 PP 사업권을 획득하지 못한 채널 준비 사업자가 36개에 이른다.
신규 PP는 방송장비사,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정보통신 업체 등 방송경험이 없는 업체가 대부분이다.
특히 이들이 준비중인 채널이 영화·음악 등 엔터테인먼트 부문과 관광·레저·부동산 등 몇몇 장르에 편중돼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규로 방송사업에 진출하는 사업자들이 인기있거나 부가 수익 창출이 유리한 채널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채널을 준비중인 한 업체 관계자는 『양 컨소시엄에서 부동산 채널을 준비해온 업체만 4개 이상이어서 채널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사의 역할도 논란의 소지를 남겨두고 있다.
KBS가 한민족위성채널을 비롯한 공공채널 운영 등 공영 방송사의 임무를 강조해왔으나 MBC·SBS 등이 스포츠·게임·드라마 등 엔터테인먼트 장르 PP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영세 PP들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좁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현상이 심화될 경우 전문화된 장르의 다채널을 선보인다는 위성방송의 본래 취지는 빛을 발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다매체·다채널을 표방하며 출범하는 위성방송이 방송 콘텐츠산업 육성에 어떠한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콘텐츠 산업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 신규 PP들의 해외 콘텐츠 수입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초기 자본금이 부족한 PP들의 경우 자체 제작보다는 해외 PP와의 프로그램 맞교환 등으로 콘텐츠 확보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케이블 PP들이 기존 프로그램을 위성방송에 그대로 재활용하려 하는 것도 문제다. 위성방송이 식상한 콘텐츠와 해외 프로그램으로 등으로 채워지게 되면 성공을 기대하기는 어럽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다채널 시대의 원년이 될 2001년을 기점으로 콘텐츠 산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상파 방송사와 위성방송 사업자, PP업체들이 다 함께 뜻을 모아 전력질주 해야 할 것이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