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현지시각) 세계 D램 업체들의 눈길은 이날 개장한 북미 반도체 현물시장에 쏠렸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 128M(16×8) D램 PC100의 가격이 6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말 64M(8×8) D램이 3달러선이 붕괴된 데 이어 차세대 D램까지도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가능성은 극히 낮았지만 산뜻하게 첫출발을 하고 싶었던 D램 업계에는 다소 실망감이 퍼졌다.
그렇지만 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 업계는 연초에 비트당 가격이 역전하는 「비트크로스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봤다. 이 현상이 발생하면 PC 업체들이 대용량 제품을 적극 채택해 이보다 적은 용량의 제품은 수요가 급격히 감소한다.
128M D램 가격을 64M D램으로 환산하면 3.01달러다. 2.88달러인 64M D램과 불과 0.13달러 차이에 불과하다. 현행 주력제품인 64M D램의 퇴조가 임박한 셈이다. 따라서 올해 D램 수급과 가격을 전망하려면 이제 64M 제품보다는 128M 제품을 기준으로 삼게 됐다.
64M D램의 생산은 과잉상태인 반면 128M D램은 아직 부족한 상태다. D램 업체들은 지난해부터 128M D램의 생산비중을 높여왔으나 관련 투자가 미흡해 생산능력이 수요에 비해 모자란다.
비트크로스 현상이 임박하면서 D램 업체들은 128M 이상 D램 제품 위주로 생산구조를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PC 업체들도 연초부터 128M D램 위주로 구매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같은 상황논리를 들어 업계는 64M D램과 128M D램의 가격이 현 상태에서 소폭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2분기 이후 전반적으로 가격이 올라갈 것으로 관측했다.
128M D램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64M D램은 D램 업체의 생산축소에 따른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가격 상승폭은 64M D램보다는 128M D램이 클 것으로 보인다.
64M D램도 당장은 하락세이나 북미·유럽·일본 등 선진국 이외의 PC 시장용의 수요가 꾸준한데다 128M D램과의 가격 격차 저지 등의 이유로 소폭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르면 올중반께 128M D램의 가격은 8∼9달러선으로 회복되고 연말께는 10달러 수준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중반기와 같은 D램 호황기를 다시 맞는 것이다.
이같은 가격전망이 D램 업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미 128M D램 위주로 생산구조를 재편한 삼성전자의 경우 최대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생산구조를 조정하는 현대전자나 마이크론·NEC·인피니온 등도 상황은 개선될 것으로 기대했다.
반면 나머지 일본 업체나 대만 업체들의 경우 지난해 투자가 미흡했던데다 지난해 말의 불황에 따른 자금난으로 투자여력까지 없어 128M D램 가격 상승으로 별다른 혜택을 입지 못할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해 나타났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올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상위 업체에서도 선행투자가 이뤄진 업체와 상대적으로 미진한 업체간의 격차도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업계는 128M D램 이상의 대용량 제품이 주력 메모리가 되면서 중앙처리장치(CPU)와 PC 시장 역시 고성능 제품 위주로 나아갈 것으로 전망했다.
물론 이같은 전망은 1분기중으로 PC 수요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을 전제로 한다. PC 시장 활성화가 업계의 기대와 달리 늦어진다면 이같은 전망은 송두리째 어그러지게 된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