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용주의 영화읽기>임애화 감독의 「십이야」

사랑에 관한 가벼운 열두 가지 가르침. 멜로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였던 임애화 감독의 데뷔작 「십이야」는 지난 한해 TV광고를 통해 최고의 명 카피로 떠오른 「사랑은 움직이는거야」라는 유행어를 연상시키듯 통통 튀는 트렌디 영화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제목을 따온 영화 「십이야」의 매력은 마치 순환고리처럼 계속되는 남녀의 사랑과 이별을 담백하고 유쾌하게 스케치해 나간다는 데 있다. 영화를 통해 전개되는 에피소드들은 환상적이거나 로맨틱한 포장을 벗어버린 대신 아주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봤음직한 연애과정의 세심한 흔적과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감독에게 사랑은 더이상 가슴앓이가 아니며 운명도 아니다. 잘못된 만남은 언제든지 제자리로 복귀시킬 수 있는 만남의 유희 같은 과정일 뿐이다.

성탄절 날, 일로 바쁜 애인 조니를 빼고 친구들과 함께 생일 파티를 하던 지니는 점을 보는 친구로부터 불행한 점괘를 받는다. 지니와 조니, 둘 중 한 명이 거짓말을 하고 있고 둘은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 때마침 새로운 애인을 대동하고 파티에 참석한 친구는 사진작가인 조니가 다른 모델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전한다. 파티가 끝나고 우울한 마음으로 택시에 오르려는 지니를 위해 친구는 자신의 애인인 앨런에게 그녀를 바래다 줄 것을 부탁한다. 앨런과 함께 택시를 타고 가던 지니는 백미러에 비친 둘의 모습이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인인 조니를 불러 이별을 통고한다. 그날밤 지니의 이별을 위로해주던 앨런은 함께 밤을 보내게 되고 둘은 자신들의 만남을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믿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둘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앨런은 자신에게 모든 신경을 쓰는 지니가 부담스럽고 지니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앨런이 야속하기만 하다. 잠시의 이별 기간이 있은 후 서로의 사랑을 다시 확인한 앨런과 지니는 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하와이행을 결정한다. 하지만 자신의 짐을 찾기 위해 오랜만에 조니를 만난 지니는 그에게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 오해였음을 알게 된다.

영화는 신세대의 가벼운 농담처럼 즐겁고 때론 통속적이지만 『사랑이란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인 달콤한 디저트』라 얘기하는 감독의 시선은 꽤나 냉소적이다. 즉 사랑은 영원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사랑에 모든 것을 거는 여자들이 그 우매함에서 벗어나길 기대한다. 12가지의 섹션으로 나누어 소개되는 사랑의 경구는 매우 직설적이며 조롱이 묻어나지만 누구나 경험하듯 결국 사랑의 승자는 언제나 덜 사랑하는 쪽이며 그것은 항상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