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한 문화공간이나 놀거리가 없는 우리 직장인들 가운데는 퇴근 후 감자칩을 먹으며 TV 앞에서 떠날 줄 모른다는 소위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들이 많다. 이런 「카우치 포테이토」들에게 매일 꼭 챙겨 보는 인기 프로그램의 종영은 「살 맛 떨어지게」하는 대 사건이다.
「이 프로그램이 끝나면 그 시간에 뭘 봐야 하나」 하는 심각한 고민에 빠져야 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허전함을 채워줄 만한 후속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까지는.
이런 까닭에 숱한 화제를 뿌리며 시트콤의 지존 자리를 차지해 온 「순풍 산부인과」가 끝난 이후 어떤 시트콤을 봐야 할 것인가가 TV족들의 큰 관심사다.
순풍의 열풍 이후 시트콤계를 평정한 것은 물어보나마나 MBC의 「세친구」. 지난해 2월 첫 방송 이래 월요병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이 오히려 월요일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들 정도로 인기가 치솟았다.
「세친구」의 인기 요인은 다양하다. 우선 소재면에서 본격 성인 시트콤을 표방하면서 월요일 밤 11시대에 확실한 시청층을 확보했다. 윤다훈·박상면·정웅인 등 주연 배우 3명의 독특한 캐릭터와 자칫 유치해지기 쉬운 소재를 터져나오는 웃음으로 승화시킨 이들의 연기력도 빼놓을 수 없는 성공 비결이다.
「어찌나 우울한지」 「작업 들어간다」 등 각종 유행어를 전파시켰는가 하면 안연홍·안문숙·이동건 등 걸출한 조연급들의 감초 연기도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세친구」는 이같은 인기 상승으로 올 4월 조기 종영된다. 윤다훈을 비롯해 박상면·정웅인 등 세 남자 모두 세 친구의 인기에 힘입어 여기 저기서 출연요청이 쇄도하는 바람에 너무 바빠 시트콤 촬영시간을 내기가 녹녹지 않기 때문.
「세친구」가 극성팬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막을 내리게 되면 그야말로 시트콤계는 절대강자가 없는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세친구」의 왕좌를 노리고 있는 가장 강력한 도전자는 「순풍산부인과」 종영으로 지존의 자리를 내준 SBS가 내놓은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웬만해서는….」는 일단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이다. 노주현·신구 등의 엉뚱한 코믹 연기가 돋보이고 극중 중학교 3학년생으로 나오는 「영삼」과 그의 세 친구들의 행동이 요즘 아이들의 세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것.
그러나 지나치게 과장된 몸짓과 자주 등장하는 욕설로 억지 웃음을 자아낸다는 비난 역시 만만치 않다. 특히 이 시트콤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욕이 너무 자주 나와 민망하다」는 의견이 쇄도하는 등 개선의 여지를 던져 주고 있다.
또 SBS의 「골뱅이」와 MBC의 「뉴논스톱」은 「남자셋 여자셋」의 명맥을 잇는 대학생을 소재로 한 시트콤.
두 프로그램 모두 남녀 주인공들 간의 엇갈린 애정이나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좌충우돌식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으나 대학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언제까지 극을 이끌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세친구」 제작사인 조이아이TV는 「세친구」 다음 작품을 4월부터 촬영하기 위해 신인 탤런트와 작가 선발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세친구」를 능가할 새로운 시트콤을 만들어 내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카우치 포테이토」들은 당분간 방송 채널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자기 입맛에 맞는 시트콤을 고르느라 바빠질 것 같다. 그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방송사들의 시청률 경쟁도 또한 덩달아 춤을 출 것은 분명하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