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회의 디지털세상 이야기>32회-뭉치면 죽고 헤치면 산다

우리는 일찍부터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고 배워 왔다. 하지만 네트워크 시대는 개인의 창의력과 능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인터넷의 발전방향은 몇몇 기술자나 기업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이용자들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이용자 개개인의 역량이 소중한 시대인 것이다. 우리나라 민족이야말로 바로 그런 21세기에 알맞는 기질을 갖추고 있다.

우선 끈질긴 생명력과 뛰어난 적응력을 갖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리는 980번 이상의 크고 작은 전쟁을 겪었다. 고려시대에는 1년에 평균 한번씩, 조선시대 때는 1년반 만에 한번씩 침략을 당했다. 주변국가 중에는 이렇게 많이 침략을 당한 나라가 별로 없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그 많은 전쟁을 겪어오면서 강인한 성격과 변화에 대처하는 현실적인 삶의 방법들을 터득했다. IMF는 위기에 강한 우리 민족의 특성을 잘 보여주었다. 추운 시베리아에서 벌목하고, 또 한편 더운 사우디 사막에서 건설을 해내는 것이 우리 민족인 것이다.

또 다른 우리의 기질은 개인의 개성이 강해 단결이 잘 안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치에 민감하고 쉽게 나뉘며 위의 지시에 잘 순종치 않는 경향을 갖고 있다. 이러한 민족성은 역사적인 배경에서도 기인된다.

전쟁을 치르는 방법을 보면 그 민족의 특성이 나타난다. 유럽에서는 십자군 전쟁 당시 맨 앞에 선 사람이 리처드 왕자같은 지배계급이었다. 2차 대전 당시에도 노벨상을 받게 될 한 귀족 출신의 물리학자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최전방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미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우리가 잘 아는 명문 케네디가는 2차대전 당시 큰 아들이 전투기 조종사로 싸우다 전사했다. 둘째인 존 에프 케네디 역시 최전방에서 어뢰정 함장으로 근무하다 크게 부상을 입었다. 이와 같이 지도계급층이 책임을 다해 국민들을 위해서 피를 흘린다. 일본의 경우도 전시에는 성주와 사무라이들이 직접 나가 싸우고 평민들은 도시락을 싸 가지고 제일 잘 보이는 데 앉아서 구경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까지는 서양의 경우처럼 귀족이 전쟁터의 맨 앞에서 싸웠다고 한다. 신라의 화랑제도가 좋은 예다. 하지만 김용운 박사의 「한민족의 원형」에 보면 신라가 당의 세력을 끌어들여 삼국을 통일하면서 우리 민족의 의식이 달라졌다고 한다. 점점 지배계급이 국민들을 위해 피를 흘리지 않자 피지배계급인 평민들의 양반에 대한 존경심이 점차 약해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과거제도가 생겼다. 그리고 그 「과거」는 오늘날 「고시」로 이어져 수백년동안 「붙기만 하면 신분이 바뀌고 평생이 보장」되는 「이도령 신드롬」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다. 「쨍 하고 해뜰 날 돌아온다」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언젠가 때가 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자기암시가 우리 민족성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개인이 강한 반면 뭉치면 일이 잘 안되는 특성을 갖게 되었다. 일본과 비교해 봐도 우리는 일대일로 일본인을 만나면 지지 않는다. 그러나 여럿이 뭉쳐하는 단체전에는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것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년간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경제성장을 30년만에 이루어냈다. 위기를 극복하는 정신력과 「잘살아 보자」는 기치아래 뭉친 결과였다. 하지만 이제는 네트워크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는 우리 민족같이 저마다 잘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잘맞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제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의 장점을 살린다면 21세기에 한민족이 또 한번 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민족의 역사는 시련과 도전의 역사다. 그리고 한민족은 끈질긴 생명력과 적응력 그리고 개인이 강한 민족이다. 모두가 연결되어 개인의 능력이 네트워크 안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우리는 흩어져야 한다. 「남이 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벤처와 「소호족」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우리는 뭉치는 것보다 흩어지면 더 강해지는 민족성을 갖고 있다. 뭉치지 못한다고 탓하지 말고 그 때문에 강할 수 있는 한국인의 저력을 믿고 기를 살리자.

김형회 (주)바이텍씨스템 회장(hhkim@bite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