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핵심으로서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게임산업의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절름발이다. 특히 국내 게임산업의 본류격인 PC 패키지 시장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외산 게임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된다. 미국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라는 외산 작품들이 게임산업의 빅뱅을 몰고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도 디아블로2·레드얼럿2·피파·에이지오브엠파이어·레인보우식스와 같은 외산 게임들이 게이머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면서 시장을 나눠 갖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국산 게임의 대반격이 시작됐으며 이미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선봉장은 소프트맥스(대표 정영희)의 「창세기전3 파트2」가 맡고 있다. 소프트맥스가 자체 개발한 토종 국산 게임인 「창세기전3 파트2」는 지난해 12월 23일 출시돼 5일 만에 5만장 판매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국산 게임의 경우 1만장 정도를 판매하면 성공작으로 대접받는다. 5만장을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더욱이 발매 5일 만에 5만장을 돌파한 경우는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2」와 같은 외산 블록버스터나 가능한 일로 여겨져왔다. 「국산은 안된다」는 통념을 깨고 「창세기전 3 파트2」는 1월 현재 1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각종 인기 순위에서 외산 게임을 물리치고 「넘버1」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국산 게임의 르세상스를 가져온 「창세기전」의 성공 신화를 일궈낸 히로인은 정영희 사장(36)이다. 선이 굵은 여성 CEO로서 「온갖 풍파를 견뎌내고 피어난 들꽃」에 비유되는 정 사장이 소프트맥스라는 게임 개발사를 창립한 것은 지난 93년 12월. PC 게임 시장이 막 형성되기 시작한 당시 대부분의 업체들은 해외 유명 게임업체들의 작품을 수입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하지만 정 사장은 국산 게임의 가능성을 보고 개발사를 설립했으며 창업 다음해인 94년 창세기 프로
젝트를 시작했다.
『당시 여건과 상황을 이제와 돌이켜보면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국내 최고를 고집했습니다. 시나리오에서 장르·그래픽·인터페이스 등 게임의 모든 요소에서 우리나라에 맞는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정 사장과 개발팀은 롤플레잉게임(RPG)과 시뮬레이션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찾아냈다. 각고의 노력 끝에 95년 12월 「창세기전1」을 출시했으며 국내에서 4만5000장이 팔려 나갔다. 이후 창세기전 시리즈는 계속해서 6종이 출시됐으며 후속작들은 연이어 새로운 기록을 경신했다.
『창세기전은 유난히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은 타이틀입니다. 지난해 출시된 「창세기전3 파트2」의 판매량 10만장을 합치면 지금까지 내수로만 61만3000장을 판매했습니다. 현재 판매 중인 창세기전3 파트2의 판매가 꾸준히 늘고 있어 앞으로 최소한 15만장, 많으면 20만장 정도는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동안 수출도 크게 늘어 이제까지 일본·대만·중국 등지에 총 19만장을 수출했다. 이렇게 계산하면 창세기전 시리즈는 올해 안에 내수와 수출 물량을 합쳐 100만장은 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지역 최고의 기록을 예약해 놓고 있는 것이다.
『슈팅 게임과 액션이 유행하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장르인데다 전문 일러스터를 고용해 그래픽을 깔끔하고 화려하게 처리했고 선과 악의 대결을 주제로 한 방대한 시나리오가 성공 비결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이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그것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결단이 창세기전의 성공을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올해 정 사장은 제2의 창업을 한다는 각오로 새로운 사업을 펼쳐나갈 생각이다. 『지난 5년 동안 소프트맥스를 지탱해온 창세기전은 프로젝트 개발이라는 측면에서는 완료됐습니다. 길고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의미있는 성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새로운 출발을 한다는 생각으로 창세기전 이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 사장이 생각하는 포스트 창세기전 전략의 핵심은 두 가지다.
우선 패키지 분문에서는 창세기전에 버금가는 새로운 시리즈를 개발한다는 것. 현재 기획 단계를 넘어서 개발작업을 시작했으며 올해 말께 선보일 예정이다. 『타이틀명은 미정이며 자세한 사항은 밝힐 수 없지만 창세기전과 같은 시뮬레이션 RPG 장르의 게임입니다. 3D 그래픽과 네트워크 대전 기능이 대폭으로 강화될 것입니다. 그동안 창세기전을 개발하면서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차기작의 엔진인 「아수라」를 개발해왔으며 이미 마무리 단계입니다.』
정 사장이 준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야심작은 온라인 게임이다. 『인페이즈라는 프로젝트명으로 개발을 시작했으며 하반기께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액션 RPG 장르로서 소프트맥스만의 색깔을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내 PC 게임 분야에서 「창세기전」의 신화를 만들어낸 정 사장이 「인페이즈」라는 온라인 게임으로 현재 리니지가 주도하고 있는 이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꿔 놓을지 주목된다. 결과를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이제까지 정 사장의 비즈니스 스타일을 보면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한 온라인 게임의 명품을 기대해도 좋을 듯싶다.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
약력
1964년 4월 13일생
1985년 3월 성신여대 경영학과 졸업
1985년 효성인포메이션시스템 근무
1993년 갑인물산 입사
1993년 12월 소프트맥스 설립
1994년 12월 소프트맥스 법인 전환
1998년 12월 「벤처기업인상」 수상(중소기업청)
1999년 10월 디지털에이지 설립
1999년 12월 「소프트 엑스포 99 SW 산업발전 유공자 포상」 수상
2000년 12월 「대한민국게임대상 공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