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비즈니스의 핵심은 기업의 인프라를 디지털화해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이다. 지난해까지 우리가 추진한 e비즈니스가 물리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조직의 변신을 꾀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면 이제는 화학적인 구조조정에 사용할 때다.』 금호그룹 비전경영실 내 e비즈니스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임광식 상무의 「2001년 e비즈니스론」이다.
2001년 금호는 e비즈니스의 비중을 「신규사업」에서 「그룹 관계사 공통 인프라 활용」으로 옮겨놨다. 관계사의 공통 인프라를 바탕으로 eCRM·e마케팅·eSCM 등을 펼칠 계획이다.
이런 상황은 결코 금호만의 일이 아니다.
『e마켓을 누가 여느냐보다는 재무·생산·구매·영업 등 업무 프로세스 전 영역에 합리화를 추구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선행해야 할 조건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부실을, 또 다른 구조조정을 불러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자회사에 대한 무리한 투자로 혹독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던 제일제당 관계자는 지난 99년부터 추진해온 디지털신경망(DNS) 구축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2001년 e비즈니스를 향한 국내기업의 움직임은 별 다른 낌새를 보이고 있지 않는 듯 하지만 속내는 이처럼 「근본적인」 변화를 담고 있다. 기업 경쟁력 제고에 「인터넷」이란 수단이 한 몫할 것이란 기대는 여전하지만 「신규사업을 통한 새로운 매출 창출」보다는 조달·관리·판매·마케팅 등 내부 인프라 개선을 통한 업무혁신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국내 제조기업들이 가장 많이 도입한 정보기술(IT) 인프라인 전사적자원관리(ERP)는 여전히 확산될 것으로 보이며, 그 내용 또한 업무 프로세스 통합에 이어 실거래를 위한 데이터 통합으로 심화될 것으로 예견된다.
「굴뚝기업」의 이같은 현상은 e비즈니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아무리 많은 e마켓플레이스를 열어도 내부 인프라를 갖추지 않으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대가를 치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국내 e비즈니스 산업이 위기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부정적인 견해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변화의 필요성을 e비즈니스의 주체인 기업들 스스로가 체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퇴보」나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다. 특히 기업들이 새삼 눈을 돌린 기업 내부 인프라 혁신은 결국 기업들이 「e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가」는 문제를 인식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e비즈니스의 성공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같은 변화에 대해 90년대 중반 유행처럼 번졌던 BPR를 상기시킨다. 당시 BPR는 전 산업에 큰 흐름으로 몰려왔지만 효과를 거둔 기업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회의 또한 만만치 않게 일었다. 금호그룹 임광식 상무는 이와 관련,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 이제 갖춰졌다는 점에서 「다시 리엔지니어링이다」는 말을 되새길 때』라고 말한다. 2001년 국내 e비즈니스는 업무 혁신과 이를 위한 인프라 개선 선상에서 다시 출발해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