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성 논설위원jspark@etnews.co.kr
모험은 성공할 가망이 적은 일을 위험을 무릅쓰고 행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정열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모험은 끓는 피의 아들이요 광기의 사촌이기도 하다. 그래서 모험은 변화와 창조의 어머니가 된다.
위대한 사상이나 문명은 대부분 모험에 의해 탄생했다. 소포클레스의 사상적 모험과 아문센의 탐험, 피카소의 쉬르리얼리즘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인류의 정신적 가치는 모험의 산물이다.
모험은 일상이나 평범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에는 종종 이탈과 혼란이 따른다. 가장 소중한 것을 대가로 치러야 하기도 한다. 그래서 혁명의 일상화가 있을 수 없듯 모험의 일상화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많은 모험에 노출돼 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자의건 타의건 모험을 감행해야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외환위기 속에서 붐이 일기 시작한 벤처(기업)는 대표적인 모험 사례다. 그것은 현대판 골드러시를 방불케 하는 「인터넷 오딧세이」와도 같았다.
인류 역사에서 실제로 이루어진 물리적 모험은 당시까지 실현되지 않은 것에 대한 사상이나 상상의 모험을 포함하고 있다. 사회가 활력이 있을 때 사상의 모험은 물리적 모험을 앞당긴다.
그러나 근년에 이루어진 우리 사회의 벤처는 물리적 모험이 앞섰다. 아쉽게도 사상을 완성해 내지 못한 채였다. 정부, 엔젤투자가나 자격 없는 많은 창업자들의 실패작을 양산해 냈다. 정부는 실패한 재벌정책에 대한 대안으로 벤처를 부추겼다. 갈 곳 없는 실업자를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한 벤처로 내몰아 「실업률 증가 억제」의 방편으로 삼았다. 벤처라면 일확천금을 거둘 듯한 분위기가 조성됐고 창업과 투자로 이어졌으며 일반인들은 현혹됐다.
그러나 벤처에 화수분처럼 유입되던 자금줄이 끊기고 전세계적인 첨단 기술주에 대한 거품이 제거되자 벤처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결과는 KO패였다.
지난해 우리는 벤처가 그 지경이 되자 비로소 스스로의 모습을 돌아봤다. 자문했던 것은 수익모델이 있는지였다. 진정한 벤처냐 하는 색깔 논쟁도 있었고 섣부른 옥석 가리기도 있었다. 기업가의 도덕성이 잣대가 되기도 했다. 경영자의 순수한 생각을 높이 사는 순진함도 가세했다.
벤처기업은 그러한 것들만 갖추면 과연 성공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모든 벤처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이지만 진실은 대부분이 실패하는 것이다. 벤처의 성공률이 5%도 채 안된다고 하는 데도 벤처에 발을 담그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5%내에 들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도 전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명함을 내밀고 있는 곳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다. 그렇지만 그곳은 최근 벤처기업인 닷컴의 공동묘지가 되어간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닷컴기업의 주 수익원이 되는 광고시장의 전망도 회색 일색이다. 생성에서 발전으로 이어지는 벤처도 없진 않지만 생성과 함께 사멸하는 벤처가 부지기수다.
자본주의처럼 급변하는 사회도 드물다. 특히 우리는 새해 들어 많은 환경이 지난해와 달라졌다. 그런데도 정부가 벤처를 대하는 시각에는 별 변함이 없는 듯하다. 올해 김대중 대통령은 4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이어 정부는 17일 벤처를 창업할 경우 취득·등록세를 면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실업대책을 발표했다. 벤처를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한 대안으로 보는 정부의 자세는 지난해와 똑같다.
정부가 벤처를 지원하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벤처를 실업대책으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다. 벤처가 일시적으로 실업자를 줄일 수는 있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수많은 실업자를 양산할 가능성이 커진다. 벤처의 성공률이 5%라면 실패할 확률은 십중팔구다. 아무리 실업자라 하더라도 성공률이 낮은 벤처로 가라고 등을 떠밀 수는 없다.
적어도 새해는 벤처를 그냥 부담없이 술 한잔 권하듯 그렇게 권할 일이 아니다. 막연하게 『그래도 벤처는 우리의 희망』이라고 부추길 일 또한 아니다. 이제 우리는 시작이나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결과로서의 모험을 생각해야 할 때다. 누구나 모험을 착수하고 실행할 권리는 있다. 그러나 모험은 즐길 만한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들 가운데도 극히 일부에게만이 성공이라는 길이 열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