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자가 17일 발표한 자구안이 어느 정도 실현될 것인가에 업계와 투자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 및 투자자들은 현대전자가 지난해 11월말 발표했던 자구계획에 비해 다소 구체화해 진전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현대전자의 자구안이 반도체 시장의 조기 회복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불안정하며 자산매각과 같은 작업이 제대로 이뤄질지의 여부를 미지수로 보고 있다.
이날 자구안 발표에도 불구, 현대전자가 자력으로 유동성을 극복하는 게 만만치 않다는 시각이 아직은 지배적인 것이다.
◇ 자구안엔 뭘 담았나 =기본 방향은 이전의 자구계획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달라진 것은 자산매각 대상을 조금 더 구체화한 것과 인력 구조조정이 추가됐을 뿐이다.
현대전자는 올해 만기 도래하는 5조3000억원의 차입금 상환과 아울러 유동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반기 4000억원, 하반기 6000억원 등 총 1조원 규모의 자금을 확보하기로 했다.
1조원은 유가증권 매각 40%, 사업 및 시설 매각 40%, 영동사옥 등 부동산 매각 20%다.
이러한 자구노력으로 현대전자는 차입금 비율은 지난해 120%에서 올해 84%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전자는 또 관계사 지분 19.2%를 조기에 매각해 계열분리를 완료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현대전자는 오는 3월까지 회사명도 바꿔 현대와 독립적인 반도체 전문회사로 거듭날 방침이다.
◇ 자구계획이 제대로 실현될까 =현대전자가 올해 갚을 부채는 5조3000억원이며 마련할 자금은 자산매각 1조원을 포함해 모두 6조3000억원 규모다.
현대전자는 자산매각 대금을 예기치 못한 유동성 문제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 쓴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자산매각이 쉽지 않은데다 제값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유가증권 매각의 경우 현대전자뿐만 아니라 계열사 주식이 저평가돼 증시가 호전되지 않는 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또 영동사옥을 비롯한 자산매각도 최근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제값에 제 때 팔 수 있을지도 의문시된다.
현대전자는 통신주 등 보유유가증권과 영동사옥, 폐수처리시설 등을 상반기 4000억원, 하반기 6000억원을 팔겠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협상 대상과 일정을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현대전자는 『구체적으로 밝힐 경우 자산 가치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현대전자가 2조원 정도로 잡은 가용 현금도 반도체 시황이 조기에 호전된다는 전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미지수다.
일반적인 관측은 2분기부터 D램 시장이 호전된다는 것이나 그 시기가 늦어질 수 있으며 현대전자의 제품 포트폴리오상 가격 상승의 이점이 적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이날 박 사장의 기자회견장에 동반한 제프리 셰이퍼 살로먼스미스바니 부회장은 『경기에 민감한 반도체 산업의 성격상 현대전자의 유동성 문제는 곧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라며 『현대전자의 개선계획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말했다.
박종섭 사장도 『반도체 중심의 세계적인 전문회사로 거듭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특히 99년 통합당시 12조3000억원에 달하던 차입금을 그동안 꾸준히 축소한 점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박 사장은 『다시는 유동성 위기가 없도록 하겠다』며 『올해 실적을 평가받고 그 책임을 분명히 지겠다』고 배수의 진을 쳤다.
다음은 박종섭 현대전자 사장의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다.
-현대 계열사가 보유한 현대전자 지분 등 유가증권의 매각 대상은 대만 업체라는 소문인데.
▲현재 대만업체와 진행되는 것은 없다.
-인력 및 조직 구조조정은 노동조합과 합의된 것인가.
▲고통분담 차원에서 노동조합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으므로 인원 구조조정 등의 문제는 없을 것이다.
-경영개선계획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많은데.
▲모든 개선계획은 1·4분기 D램 평균가격 3.9달러를 상정하고 수립한 것이다. 그러나 현대전자는 현재 4달러 이상의 판매가를 유지하고 있으며 EDO, 그래픽 메모리 등 수익구조가 탄탄한 제품 판매에서 호조를 보이고 있으므로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산업은행 차환발행인 2조9000억원이 1년후 다시 만기 도래하므로 유동성 문제가 재발하는 것은 아닌가.
▲차환발행건에 대해서는 만기 도래 시점을 50%는 1년, 나머지 50%는 1년반씩으로 조정했다.
-현대전자 경영개선계획에 대한 살로먼스미스바니의 실현 가능성 판단 근거는.
▲(제프리 셰이퍼 살로먼스미스바니 부회장) 이미 최선 또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 상태이며 현금 흐름분석 등에 기반해서 실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박종섭 사장) 덧붙여 현대전자의 상보성금속산화막(CMOS) 기술 등은 세계적으로 한번 도전해 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투자 규모는.
▲1조원 정도이며 12인치 웨이퍼 설비를 순연했기 때문에 대대적인 투자 필요성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시스템IC, 웨이퍼 파운드리 서비스 등에는 소규모 투자가 지속될 것이다.
<김인구기자 cl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