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일본 영화의 상영은 금지됐지만 그동안 일본 영화는 늘 우리의 주변에 있었으며 영향을 미쳤다. 일본 영화통들은 1980년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명 감독의 복사본이 나돌면서부터 일본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일본 영화를 볼 수 없었던 시절 일본 유학생이나 현지인들이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테이프들을 갖고 들어 왔으며 대학의 영화 동아리, 시네마테크(소극장의 일종), PC 통신의 영화 동호회 등은 이를 이용해 일본 영화를 감상하고 연구해 왔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 영화에 대한 붐은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로 이어졌으며 이후 각종 영화제를 통해 일반인들이 일본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이같은 상황에서 지난해 6월 문화관광부는 「일본 대중 문화 3차 개방」을 단행했다. 성인 영화(18세 관람가)를 제외한 모든 일본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한 획기적인 조치였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1999년에 개봉된 일본 영화는 4편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23편으로 늘어났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를 비롯한 몇몇 작품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지난해 일본 영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7.4%로 전년도에 비해 2배 이상 뛰어 올랐다.
문화부의 3차 개방으로 그동안 금지됐던 일본 영화의 극장 개봉이 허가됨에 따라 일반인 사이에 일본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더 많은 일본 영화들이 배급될 것이며 국내에서 열리는 각종 영화제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할 것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일본 영화가 두자릿수의 시장 점유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호기심과 지적 갈망은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 일본 영화에 대한 자료 자체가 많지 않은데다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안내서는 더욱 드물기 때문이다.
도서출판 삼진기획에서 나온 「우리가 주목할만한 일본 영화 100」은 일본 대중문화 바로 읽기 시리즈의 첫번째 책으로 일반인을 위한 일본 영화 소개서다.
월간 키노의 정성일 편집장은 『아직까지 일본 영화는 올바르게 우리와 만난 적이 거의 없다. 「국화와 칼」로 표상되는 섹스와 폭력이거나 재패니메이션 「오타쿠」들에 대한 정보 제공, 아니면 일본 영화의 황금시대라고 알려진 거장들에게 편중되기 일쑤였다. 이 책은 영화 애호가들에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일러주는 지표 역할을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에서 시작해 하라다 마사토에 이르는 넓은 스펙트럼은 매우 꼼꼼하면서도 때때로 대범하게 우리를 일본 영화의 새로운 입문에로 이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쓴 전운혁 씨는 각종 전문지에서 10년 동안 영화 담당기자로 활동해 왔다. 그는 이 영화들을 모두 보았고 감독과 배우들을 직접 만났다. 이 책에 쓰인 100편의 영화는 이미 국내 개봉이 된 것도 있고 앞으로 개봉될 것들도 있다. 각종 국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들을 비롯하여 흥행작, 작품성 있는 영화 등을 무순으로 엮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구로사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쓰카모토 신야, 이와이슈운지, 이타미 주조, 오쓰 야스지로, 기타노 다케시 등 쟁쟁한 일본 감독들의 작품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가벼운 다이제스트 형식으로 구성됐지만 본문을 찬찬히 들여다 보면 전문 지식을 지닌 일본 영화통인 저자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감독과 배우들에 대한 자세한 프로필, 영화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 일본 영화 역사와 기법 등이 함께 담겨 일본 영화 문외한인 독자까지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편집됐다. 저자가 현장에서 직접 찍은 사진도 다수 실려 있어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
전운혁 지음, 삼진기획, 크라운판 452쪽, 1만2000원
<이창희기자 changh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