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더 뉴스>한국여성벤처기업협회 신임 이영남 회장

언뜻 보기에는 20대 요조숙녀 같은 미녀. 그러나 몇 마디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가슴속에 내재된 강한 집념이 드러나는 여자. 벤처업계 아마조네스 군단을 새로 이끌어갈 이지디지탈 이영남(44) 사장의 이미지다.

『최고가 아니면 생존하기 힘든 벤처 생태계에서 여성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려면 여성 특유의 섬세한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휴먼 네트워크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2일 여성 벤처기업인의 구심체인 한국여성벤처협회(KOVWA) 2대 회장으로 선출된 이 사장은 『모든 경제 주체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어 가는 시점에 회장직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면서 『앞으로 여성벤처협회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밤잠을 설친다』고 취임 소감을 피력했다.

이렇게 엄살을 부리지만 이 회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여성 벤처인의 응집력 강화 등 남다른 복안을 갖고 있는 듯했다. 그가 말하는 복안이란 여성 벤처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 개선과 여성 특유의 강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으로 압축된다.

이 회장은 우선 인프라 부분에서 남녀차별을 반드시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경제 구조가 수십년간 남성 중심으로 이뤄진 탓에 여성들이 기업을 경영하는 데는 너무도 많은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성들도 일종의 특혜를 바라는 소극적 자세를 버리고 기업인으로서 당당히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이처럼 여성 벤처에 대한 소신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것은 10여년간 기업을 경영하면서 직접 경험한 결과의 표현이다. 여성 벤처기업은 물론 전체 벤처업계에서도 이젠 중견에 속하는 이 회장은 그 경륜만큼이나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 20대 초반이던 지난 81년 광덕물산에 입사, 처음부터 영업부서를 자원했으며 그후 탁월한 영업력을 인정받아 신규사업 분야인 전자사업부를 맡으면서 전자·정보통신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지난 88년 광덕물산은 전자사업부를 분사시키면서 그를 실질적인 사령탑(전무)으로 앉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경영진이 그의 사업 추진력을 그만큼 신뢰한 것이다.

이지디지탈의 전신인 서현전자도 이렇게 출범했으며 그는 지난 96년 대표이사를 맡았던 엔지니어 출신 남편의 용단과 함께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이후 그는 특유의 친화력과 활달한 성격을 바탕으로 이지디지탈의 사세 확장과 함께 여성 경제인·벤처인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보이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난 97년 전국소기업연합회 공동대표로 취임, 그해 10월 상공인상 수상, 98년 벤처기업협회 임원 선임, 그해 7월 모범여성경제인 대통령 표창 수상, 99년 여성벤처협회 부회장 선임, 그리고 지난해에는 벤처기업특별위원회 위원 위촉과 2000벤처기업대상 철탑산업훈장 등이 뒤따랐다.

사회적으로는 화려한 족적을 남겼지만 기업 경영은 또 달랐다. 『IMF가 터지자 거래처인 만도기계의 부도로 자금난에 봉착해 다방면으로 해결 방안을 찾아 나섰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 회장은 『돌이켜보면 기업 경영이라는 것이 여성으로서 감당하기 힘든 게 너무 많았다』며 『해외 바이어들 덕택에 위기를 넘겨 지난해 매출 253억원의 중견기업으로 올라섰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여성 벤처 경영인도 스스로 여성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비즈니스 룰에 따라 생존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추는 게 필수라는 진리를 터득했다. 특히 기업에 있어 「신뢰」와 「투명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지금까지도 비즈니스와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시하는 대목이라고 말한다.

이제 이 회장은 이지디탈 사장이 아닌 KOVWA의 수장으로서 또 다른 의욕을 보이고 있다. 우선 여성 경영자가 갖는 신뢰와 투명한 경영 방식이 기업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벤처업계에 녹아들 수 있도록 KOVWA의 활동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현재 110개 정회원사와 540개 준회원사로 구성된 협회 회원사를 더 늘리고 꾸준히 생겨나는 벤처기업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젊은 벤처 경영인을 이사진으로 영입할 생각이다. 이를 통해 신·구 여성 벤처인이 갖고 있는 경험과 창의성의 조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여성 벤처인들의 의례적 친목단체가 아니라 수익사업에 기반한 「적극적인 협회」를 만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비록 비영리 단체지만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협회 및 회원사의 이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거듭난다는 것. 이를 위해 우선 분야별로 분과위원회를 활성화하고 정부자금 및 각종 벤처지원책을 확보해 회원사의 실질적 활용을 유도할 계획이다.

더불어 지방 로드쇼 등을 통해 그동안 각종 정보와 지원에서 소외된 「지방벤처 육성」에 주력하고 선·후발 여성 벤처기업들을 연계한 컨소시엄을 구축, 미국·유럽·일본 등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 여성 벤처의 「글로벌화」를 도모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각오다.

『21세기에는 인터넷산업 등 고급 여성 인력의 사회 활동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활발한 활동을 위한 사회적 인프라는 여전히 미미한 실정이죠. 따라서 은퇴한 고령층 인력을 활용할 수 있고 젊은층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 활동에 주력할 수 있도록 관련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구세대가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죠.』

이 회장은 『여성 벤처인들은 물론 다양한 경제 주체들과의 나눔을 통해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할일이 태산 같다』며 『협회를 통해 기업이라는 공통분모 위에 여성 벤처기업의 지속적 발전이라는 분자를 키워갈 것』이라고 힘줘 말한다. 이 회장은 특히 때가 되면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새로운 인생을 펼쳐볼 요량이다. 그가 체득한 경영철학과 노하우가 다른 벤처에 녹아들어 「제2의 이영남」을 만나길 기대한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약력>

△57년 9월 3일 출생

△81년 동부산대 졸업

△81∼84년 광덕물산 근무

△88년 이지디지탈(구 서현전자) 설립

△98년 모범여성경제인 대통령 표창

△99년 한국여성벤처협회 부회장

△2000년 2월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수료

△2000년 5월 벤처기업 특별위원회 위원

△2000년 9월 2000벤처기업대상 철탑산업훈장 수상

△2000년 11월 무역의날 500만불 수출탑 수상

△2001년 1월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