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회로(CC)TV 카메라, 모니터, 영상회의·보안·경보 시스템 등을 만들며 해외시장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하이트론씨스템즈. 이 회사는 지난 91년 걸프전이 터지면서 수출의 95%를 소화해줬던 쿠웨이트의 바이어가 행방불명되며 절박한 위기에 빠졌다.
회사 문을 닫아야만 했던 시기에 발벗고 나선 사람이 바로 TG벤처(전 한국개발투자금융)의 채현석 상무(42)였다. 채 상무는 두차례로 나눠 당시로서는 거금인 총 10억원을 직접 투자한 데 이어 무려 100억원에 육박하는 외자를 유치, 하이트론을 벼랑끝에서 구해준 것이다. 이후 하이트론은 98년 거래소시장에 상장, 현재까지도 업계에서 탄탄한 위치를 구축하고 있다. 채 상무 역시 하이트론 덕택에 250억원이라는 투자수익을 거뒀다.
『개인적으로 내재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사에 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대부분 초기 기업들이 이런 위치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이트론도 비슷한 상황이었지요.』
삼성종합기술원에서 하드디스크 개발을 맡다가 지난 88년 TG벤처의 벤처캐피털리스트로 입문한 채 상무의 이같은 투자지론이 성공신화를 연출한 것이다.
채 상무의 위기기업 투자 모험담(?)은 계속됐다. 지난 92년 자금사정으로 공장건립이 중단된 크린크리에티브에 3억원을 투자해 이 회사를 되살리며 99년 코스닥에 올려놓았으며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용 유리 산화인듐(ITO) 코팅 기술보유업체인 하이백테크놀러지(구 고진공산업)에 두번에 걸쳐 10억원의 자금을 투자했다.
하이백은 투자 직후 IMF로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현재는 국내외 유수의 이동전화 단말기 제조회사로부터 자본유치 및 기술제휴 제안을 받은 상태다. 이처럼 채 상무가 그동안 발굴·투자한 업체들의 투자회수 금액만도 1000억원에 육박한다. 신성이엔지·텔슨전자 등이 대표적인 기업.
그렇다고 채 상무의 투자가 늘 성공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89년 첫 투자를 실시했던 통신장비업체 G사의 경우 투자원금만을 회수하는 수준에 그쳤다. 그러나 이 투자로 채 상무는 벤처는 CEO의 역할이 회사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원칙을 깨달았다. 이후에도 반도체용 바닥제업체인 P사 등 몇몇 회사에서 쓴 경험을 했다.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벤처투자입니다. 최근에는 투자기업 심사기간이 무척 짧아져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최소한 2∼3개월의 시간은 있어야 회사는 물론 CEO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데 그럴만한 여유가 없기 때문이지요.』 채 상무는 그래서 올해 5개 기업만 중점 투자, 관리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더 이상 투자하는 것은 기업은 물론 개인적으로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에서다.
채 상무는 『새로운 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이 좋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벤처캐피털리스트의 길을 택했다』면서 『성공한 투자기업 사장을 만날 때면 13년 전의 선택에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