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왜 신의주인가

중국방문을 마친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귀국길에 신의주에 들러 3일씩이나 현지지도를 한 것은 그의 방중 행적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됐던 일이라 할 수 있다. 신의주일대는 북한이 중국식 개방모델을 수용할 수 있는 최적의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다.

방중기간동안 김 위원장은 중국식 개방의 전진기지인 상하이 지역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곳에서 그는 첨단정보기술의 산실인 푸동의 대단위 소프트웨어개발지구와 인간게놈연구센터 그리고 중국 외자유치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화훙(華虹)NEC와 제너럴모터스(GM) 등을 방문하는 과정에서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엄청난 변화」의 쇼크를 받았다. 그는 또 『중국의 개방정책이 옳았다』며 귀국하면 『젊은 피로 확 바꾸겠다』는 각오도 다졌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귀국 길에 여장도 풀기 전 신의주를 방문한 것은 그만큼 중국식 개방모델의 수용이 급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신의주인가.

북한이 처음으로 중국식 개방모델을 따른 것은 지난 84년 합영법 제정을 통해 외자를 직접 유치하면서부터다. 중국식 개방모델은 「하나의 중심과 두개의 기본점(一個中心, 兩個基本點)」 전략에서 출발한다. 모든 역량을 국가적 당면목표인 경제건설을 위해 선진기술과 외자를 받아들이는 개방정책을 수용하되 사회주의 노선은 반드시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체제수호가 우선이냐 개방이 우선이냐라는 논란은 있지만 아무튼 이 전략은 한마디로 자본주의를 실용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북한은 「하나의 중심과 두개의 기본점」 전략을 체제수호에 중점을 둔 점분산형(點分散型) 개방정책으로 받아들였다. 제한된 지역을 선택적으로 고립시켜 개방함으로써 체제내부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개방의 필요성을 해결해 나가겠다는 것이 그 골자다. 여기에는 첫째 수도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군사지역이 아닐 것, 둘째 항구를 낀 해안도시로서 외국과의 경제적 호환성이 있을 것, 셋째 산업기반시설이 갖춰져 있고 인력조달이 용이한 곳 등 4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4가지 조건에 부합할 수 있는 권역으로는 평양-남포권, 원산-함흥권, 해주-개성권, 나진-선봉권 그리고 신의주권 등 5개권이 꼽힌다. 이 가운데 북한 최대의 인구밀집지역인 평양-남포권은 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지만 첫째조건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에서 개방의 맨 후순위에 처져있다. 중공업 중심지역인 원산-함흥권은 외국과 경제적 호환성이 떨어지고 개방의 기초인 경공업기반이 취약하다. 해안도시이긴 하나 동해안이라는 점에서 항구조건이 열세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해주-개성권은 남한에 인접해 있어 물류비를 절약할 수 있고 남측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는 위치이지만 군사밀집지라는 한계가 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개성공단 역시 10년쯤 후에나 완성된다는 점에서 진정한 평가가 유보되는 지역이다. 경제특구인 나진-선봉권은 첫째와 둘째 조건에 부합하는 권역이지만 SOC 등 산업기반시설이 크게 미비하고 대외 무역집중량도 낮아 외국기업을 유치하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이미 실패한 경제특구라는 평가가 내려진 상황이다.

신의주권은 5개 권역 중 유일하게 3개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권역이다. 무역집중량의 경우 대중국무역만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고 중국측의 카운터파트 도시로서 단둥이라는 훌륭한 배후 국제도시가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북한은 지난 91년 중국식개방모델을 처음 수용하면서 나진-선봉을 경제특구로 지정했지만 체체수호를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큰 소득을 보지 못했다. 체제수호보다는 자본주의의 실용적 수용이 더 절박하다는 게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 쇼크 전모라고 본다면 신의주일대의 개방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인구 35만명으로 평안북도와 자강도 등 한반도 북서부 지역 최대의 경공업도시인 신의주는 특히 북한 내부에서도 나진-선봉 경제특구의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기고 있는 지역이다. 경의선이 복원되면 대륙 연결의 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신의주는 한국과 북한 중국을 잇는 최대의 교통·물류 중심지로 거듭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신의주가 경제특구로 지정되면 가장 선호될 업종으로는 역시 과학기술과 전자정보통신 분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방문 때 경제학습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 대부분 이 분야인데다 북한의 개방정책 효과를 가장 극적으로 달성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업들이 이 지역의 개방을 미리 점치고 현재 추진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모델로 하는 신의주-단동 멀티미디어소프트웨어밸리 계획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관련기업들을 대거 유치하여 이 일대를 동북아 최대의 전자정보통신개발단지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 계획은 현재 한국의 하나비즈닷컴이 북한합작기업 금강산국제그룹과 북한의 대남경제협력창구인 민족경제협력련합회(민경련)와 함께 추진하고 있지만 북한정부의 개방일정에 대한 불투명성으로 답보상태를 걸어왔다. 그러나 이번 대내 외에 밝힌 김 위원장의 개방의지를 감안해볼 때 신의주-단동멀티미디어소프트웨어밸리 계획은 조만간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가 된다.

<표> 북한의 개방가능지역 비교

대상지역 입지조건 북한의 개방가능성 외국인 선호도

평양-남포권 인구밀집지역, 수도에서 가까움 매우 낮음 매우 높음 자체 시장 형성가능성 높음

원산-함흥권 중공업중심지, 경공업 열세 중간 낮음

해안도시이나 항구조건 열악

해주-개성권 남측인접, 물류비절감, 전력지원용이 중간(조건부개방) 높은편

군사밀집지역

나진-선봉권 외국과 경제적호환성, 해안도시 개방 매우 낮음

산업기반시설 취약

신의주권 외국과의 경제적 호환성, 항구도시 매우 높음 높은 편

산업기반시설 양호, 경공업중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