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회의 디지털세상 이야기>34회-입시지옥과 디지털시대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교육에 대한 관심은 가히 세계 최고다. 자식들이 좀 더 좋은 학교에 갈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규모는 정부의 연간 교육예산을 능가한다. 과외비 문제가 더 이상 한 개인이나 가정에 부담을 주는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에 파행적인 경제활동과 계층간의 위화감을 불러일으키는 국가적 문제가 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우리 정부는 과외금지법을 제정하고, 일류학교를 폐지해 학교 평준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과외금지법은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로 하여금 불법인줄 알면서도 「남들 다하는 과외를 나만 못하면 손해」라는 생각으로 별 죄책감도 느끼지 않으며 과외에 가담케 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불법임을 알면서도 대학진학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과외를 해야했던 이들이 사회에 배출될 때, 이 사회는 법과 질서를 지키기보다 편법과 변칙에 더 능숙한 이들에 의해 주도될 것이 우려된다. 한국은 빠른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만연된 모럴해저드 때문에 앞으로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어느 외국인 친구의 충고가 새삼스럽게 실감난다.

가치관은 이루기도 어렵지만 이를 지키기는 더욱 어렵다고 한다. 한번 무너지면 회복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곳곳에서 가치관이 붕괴되는 여러가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심지어는 종교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고 준법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고 편법이 능사인 사회가 되었다.

교육 평준화 조치 또한 획일적인 사고와 맹목적인 경쟁환경에 길들여진 인재를 양산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교육 평준화는 대량 생산 산업구조에 필요한 기술인력을 양산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와서는 사정이 다르다. 따라서 정부는 교육 평준화가 진정 디지털시대를 대비하는 올바른 정책이냐를 다음의 두가지 측면에서 심각하게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첫째, 디지털 시대는 창조적이며 개성있는 능력을 가진 인재를 필요로 한다. 따라서 획일적인 점수 위주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재능을 찾고, 키워줄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입시에 정해진 모든 과목을 잘해야 하는 부담을 없애고 하나만 잘해도 인정받고 칭찬받는 서구식 교육환경을 빨리 도입하고 정착시켜가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는 규제보다 자율을 우선하여 각자의 재능을 발굴하고 키워주는 정책을 세우고 이 시대에 필요한 창조적이며 개성있는 인재를 육성할 교육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함으로써 과외가 설 자리가 없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외국 교육기관에도 과감히 문호를 개방해 유학을 가지 않고도 외국 학교의 학점을 딸 수 있도록 하는 등 외국 대학과의 협력과 경쟁을 유도해 그만큼 더 다양하고 폭넓은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둘째, 눈 앞에 보이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근시안적인 교육정책보다는 보다 장기적이며 합리적인 정책을 세우고 청소년들에게 확고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교육이 실현되어야 한다. 어느 고등학생이 국민교육헌장을 변형해 만든 「우울한 고교교육헌장」의 내용이다. 「우리는 명문대 입학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학교에 들어 왔다. 선배의 빛난 입시 성적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는 이기주의적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는 친구의 타도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입시의 지표로 삼는다.」 우리의 청소년들은 이처럼 인생의 가치관을 세울 귀중한 청소년기를 치열한 입시경쟁에 몰두하면서 다 허비하고 있다. 따라서 청소년들에게 관심과 재능에 따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여건을 만들고 이들이 학교 생활을 통해 자신의 인생관을 바로 세우는 계기를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교육은 백년대계여서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심을 갖고 창조적이며 차별화된 재능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기에 걸맞은 디지털 교육환경과 제도를 갖추어 가자. 그리고 지금이라도 법과 질서를 지키줄 아는 바른 가치관을 세우는 데 힘을 모으자. 디지털 시대의 성공도 결국 모럴해저드와의 싸움에 달려있다.

김형회 (주)바이텍씨스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