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엔터테인]벽안의 사람들

『승부가 명확히 갈리는 게임이야말로 남자들에게 걸맞은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건너온 것도 게임리그가 발전한 한국에 매료됐기 때문입니다.』

99년 8월, 홀홀단신 한국에 건너온 기욤 패트리(20·캐나다)는 99년 블리자드 공식 세계대회, 2000년 하나로통신배 스타리그, 온게임넷 왕중왕전 등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승하며 스타크래프트 강국인 한국 프로게임계 지존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큰 게임에 강한 기욤 패트리는 TV로 중계되는 대회에서는 반드시 우승할 정도로 화려한 성적을 거두며 강자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그가 99년부터 현재까지 벌어들인 상금은 미화 8만달러 정도. 20세 나이의 청년으로는 쉽게 꿈꾸지 못할 큰 돈을 거머줬다.

최근 게임계에는 기욤 패트리처럼 게임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을 누비는 벽안의 사람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이들의 대표적 활약무대는 게임대회. 기욤 패트리를 비롯 빅터 마틴, 제롬 리우스, 그라지아니 마크, 미구엘 봄바흐 등은 스타크래프트 강국 한국을 누비는 파란눈의 전사들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들을 용병이라고 부르지만 팀의 우승을 위해 수입된 프로 스포츠의 용병들과 달리 게임이 좋아 스스로 한국을 찾았다는 점에서 이들을 용병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처럼 세계적인 프로게이머들이 국내에 속속 들어오는 이유는 한국이 프로게임에 있어서는 확실한 선진국이기 때문. 프로게임리그가 정착되지 않은 외국에 비해 거액의 상금이 걸린 프로게임대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어 외국 프로게이머들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PC방 문화가 활성화된 것도 외국 게이머들이 한국을 선호하는 이유다.

이기석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기욤 패트리도 이런 한국의 게임문화에 매료돼 한국을 찾은 프로게이머다.

프로게임리그가 활성화된 한국을 부러워하는 기욤 패트리는 『한국 게이머들은 승리에만 집착해 경직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며 『게임을 즐기며 창의적인 플레이를 보일 수 있을 때 도리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한국 게이머들에 대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한국에 처음 와 이화여대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예쁜 여자친구까지 얻은 기욤 패트리는 실력이 되는 한 앞으로 2, 3년은 더 한국에 머물며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계획. 그 이후에는 고국으로 돌아가 대학에 진학, 비즈니스마케팅을 전공할 계획이다.

지난해 7월 한국에 건너와 KPGL대회에서 3위에 오르는 활약을 펼친 미구엘 봄바흐(22·미국)는 한국과 색다른 인연을 맺었다.

그저 게임이 좋아 한국에 건너왔지만 평생을 함께 할 백년배필을 얻었기 때문이다.

미구엘 봄바흐는 2000년 2월 배틀넷에서 프로게이머 서영미를 만난 이후 교제를 시작해 지난달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다. 프로게이머 커플이라는 점도 이색적이지만 게임을 통해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둘은 오랫동안 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대학 진학과 컴퓨터 공부를 위해 미국행을 결정한 미구엘 봄바흐와 서영미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미국에서도 프로게이머로 활동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타크래프트 세계 공인대회인 스타크래프트 마스터스 2000에서 우승한 노르웨이 출신의 프레드릭 에스타워즈(17)는 전문 프로게이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동경, 국기봉, 봉준구 등 쟁쟁한 한국 게이머들을 물리쳐 화제가 된 인물이다.

프로게임계뿐만 아니라 게임개발전선에서 활약하는 외국인들도 적지않다.

「영웅문」 「슬레이어즈」로 유명한 온라인게임업체 태울에서 일하는 그레이엄 우드(28·독일)는 3D 온라인 게임인 「매크로드」를 개발 중인 수석 디자이너.

원래 파일럿이 꿈이었으나 시력 때문에 꿈을 접고 게임 제작사에서 비행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드는 길을 택한 그는 오리진·제인스 등 해외 유명 개발업체를 거쳐 한국에 스카우트된 인물이다.

우드는 『한국의 온라인 게임은 그래픽과 프로그래밍 수준이 세계적』이라며 『스토리와 인터페이스 등을 서양인의 기호에 맞게 지원한다면 세계적인 게임 탄생도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현재 한국 게임시장은 일부 마니아들을 위한 게임이 주로 개발되고 있는 점에서 초기의 미국시장과 너무 닮았다』며 『게임유저를 확대하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무겁고 폭력적인 소재보다 쉽고 가벼운 게임들을 개발, 다양한 세대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한국 게임업계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김태훈기자 taeh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