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벤처기업(600)

정경유착<36>

김성길 명예총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자네는 그 지역 이기주의를 탈피하고 넓은 광야로 나가게. 처음에 정치에 입문하는 입장이니 여기 홍석천 의원이나 강호일 의원, 그리고 송창묵 의원의 지원을 받게. 그렇지만 호남권을 타고 일을 하려고는 하지 말게. 싹이 돋는 일에 도움을 주겠지만 그것이 묘목이 되고 뿌리를 내리면 광야로 나가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나?』

『네, 명심하겠습니다. 선배님.』

나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마치 올라가야 할 고산(高山)을 눈앞에 둔 두려움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모든 일을 결정하기 전에 노련한 선배인 홍석천 의원에게 상의해서 하도록 하게. 정치의 노하우라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거야. 자네를 만나기 전에 자네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더군. 그걸 읽어보니 기업을 깨끗하고 투명하게 이끌어오고 집념이 강하며 수완이 뛰어나다고 했더군. 로비에도 뛰어나다고 돼 있더군. 다만 약간의 스캔들이 있다는 말이 나왔는데 앞으로는 그 점에서 조심하게. 정적은 치사하게 나올 때가 있지. 사생활을 문제삼으면서 걸고 넘어지는 것이지. 언론도 마찬가지고. 무슨 말인지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나에게 초등학교 아이에게 글씨를 가르치듯이 하나하나 짚어줬다. 그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언급했다.

『이번에 전국구로 뽑아줄테니 의정활동에 나가게. 그리고 서울의 특정 지역이나 지방에 뿌리를 내리게. 다음에는 지역구로 나가란 말이 되네. 이 또한 무슨 말인지 알겠나?』

『명심하겠습니다.』

『자네 성격이 고지식하다고 들었는데 깨끗한 정치인이 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일세. 그러나 정치판이란 하수도와 같은 곳이야. 아무리 깨끗해지려고 해도 주위가 그렇게 만들지 않지.』

그는 한평생 정치 생활을 해오면서 쓴맛과 단맛을 모두 본 사람이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부정적인 의미에서 하수도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나는 하수도에 들어가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당장이라도 사양하고 기업인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사양하면 그들을 놀리는 격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