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전자상거래 협력시대가 열리는가.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사흘간 일본 오이타현 벳부시에서 제1회 한일전자상거래정책협의회 및 2001 한일EC추진협의회가 열렸다. 한일전자상거래정책협의회는 지난해 9월 김대중 대통령과 모리 총리가 오키나와 정상회담에서 「정보기술(IT)협력 이니셔티브」에 합의한 이후 마련한 첫 공식 회담이었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서의 강국부상을 기치로 내건 한일 양국이 모색하고 있는 전자상거래 협력의 배경과 전망, 과제를 짚어본다.
<한일 전자상거래 협력 모색 배경>
한일 양국이 전자상거래 교류와 협력에 발벗고 나서려는 것은 IT를 기반으로 세계 경제질서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구미 열강들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이 그 배경이다.
지식기반사회로 가는 인터넷 혁명은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대격변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이 거대한 물결에 편승하지 못할 경우 한국과 일본은 21세기에 일류국가 건설은 고사하고 2류국 또는 3류국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사실 한국은 일본보다 앞서 지식기반사회 조기진입과 그에 따른 국가경쟁력 제고를 목표로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정책추진과 민간차원의 활발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IMF 위기를 맞으면서 21세기에 대비한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e코리아 건설을 위한 국가전략 수립과 구체적인 실천과제를 수년전부터 추진해왔다. 그 결과 초고속망 보급과 전자정부 구현, 닷컴과 신기술벤처 등 신흥산업 발전 등에서 상당부분 진전을 이루었다. 한국정부는 이제 그동안의 기초닦기를 바탕으로 올해부터 전자상거래 활성화, 특히 전통산업의 e비즈니스화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전통산업의 전자상거래 및 e비즈니스화는 최대 거래상대국인 일본의 협력 없이는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일본은 지난해 기준으로 한국 수출비중의 11.99%, 수입비중의 19.83%를 차지하는 주요 무역상대국이다. 특히 수입비중은 주력업종인 화학에서 20.72%, 철강에서 32.38%, 기계류에서 38.76%, 전기전자 분야에서 27.19%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다. 부품과 생산재를 일본에 의존하는 한국산업의 특성 때문이다.
일본도 미국 주도의 지식기반사회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최근 IT에 기반을 둔 지식사회 진입에 총력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본은 올초 △초고속망 구축 △전자상거래 활성화 △전자정부 구현 △인재양성 등 4대 목표에 중점을 둔 「e일본 전략」을 수립하고 범정부 차원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e일본전략 추진배경으로 IT기반 인터넷혁명에 동승해 지식기반사회에 조기진입함으로써 다시금 미국 다음의 강국으로 부상하겠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메이지유신으로 산업혁명에 동참해 세계 2위의 강대국으로 부상한 과거 역사를 다시 한번 재현하겠다는 의지다.
특히 일본은 현재 아시아지역에서 차지하고 있는 강력한 위상을 바탕으로 일본 중심의 e아시아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터넷분야에서 가장 빠른 성장속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전망>
양국 대표단은 이번 회담에서 △서류없는 무역 실현 △안전한 전자상거래기반 구축 △e마켓플레이스 공동구축 △산업별 B2B협력사업 추진 △ebXML 아시아구축 협력 △기술거래 전자상거래시장 구축 추진 △제2차 한일전자상거래정책협의회 개최 등에 전격 합의했다.
한국측에서는 이재훈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국장이, 일본측에서는 후루타 하지메 경제산업성 상무정보정책국 심의관이 단장으로 참석했다. 명실공히 IT·전자상거래와 관련된 정부 최고 실무책임자급을 단장으로 내세울 만큼 양국 정부의 협력의지는 결연하다. 이같은 양국의 강력한 의지는 1차회담에서 7개항의 합의를 볼 만큼 협력속도가 매우 빠르게 진행될 것임을 예고해주었다.
이재훈 국장은 이번 회담을 마치고 『일본이 이번처럼 적극성을 보이기는 처음』이라며 『한국과의 협력과 정보획득에 대한 갈증·욕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했다』고 말했다.
후루타 하지메 심의관도 『실질적인 전자상거래 교류에 첫발을 내디뎠으며 교류확대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 기쁘다』며 『앞으로 교류의 폭과 속도가 더욱 확대되고 빨라지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은 7개항 합의도출이라는 성과 외에도 한일 양국이 전자상거래 교류를 확대해나가고 지식기반사회 진입에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공감하고 확인한 자리였다는 게 양국 대표단의 일치된 소감이다.
특히 양국 관계자들은 『전자상거래 추진방식이나 목표가 거의 유사하다는 개념적 접근이 이루어졌다』며 『협력확대는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낙관했다.
양국은 첫 회담에서 업종공동 마켓플레이스의 경우 중소기업 위주로 구성된 분야가 우선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기계부품 및 소재분야를 첫 과제로 꼽았다. 더욱이 우선 협력대상을 전기전자·자동차·철강·조선·정밀화학·섬유산업 순으로 한다는 데도 일치를 보았다.
전기전자의 경우 양국은 전세계 생산의 24.1%, 특히 전자부품의 경우 국내생산만 해도 3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해외생산까지 합치면 60%이상 점유하고 있다. 철강과 조선도 양국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전기전자에 못지않을 정도로 높다.
양국은 이처럼 세계시장에서 강점을 갖는 산업을 전자상거래로 엮음으로써 세계시장에서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밖에도 양국은 서구열강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전자상거래 신무역질서에도 공동대응해야 한다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전사상거래 신무역질서란 한마디로 전자상거래 및 이를 구현해주는 IT분야와 관련된 각종 제도와 기술표준으로 장차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에 세계 각국간에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세계 전자상거래의 근간으로 부상하고 있는 ebXML 표준화, 정보보호시스템의 표준을 논하는 시큐리티라운드, 정보보호 관리제도, 전자상거래 과세권과 관세문제, 상품분류체계, 전자카탈로그 표준화 등 신무역질서에서 논의될 사항은 매우 다양하다.
양국은 세계 신무역질서 재편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상호 지원과 공조가 절실한 입장이다.
<과제>
양국간 전자상거래 협력은 동일한 목표지점을 향하고 있고 또 서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만큼 매우 순조롭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면에서는 장애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 첫째가 양국의 제도와 관습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다.
일본은 매우 획일적이고 조직적인 제도와 관습을 지니고 있는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분산적이고 비조직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로 인해 정부차원에서는 물론 민간차원에서 서로의 카운트파트를 만들어나가는 일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본정부는 전자상거래와 관련한 한국측 파트너가 이원화돼 있다는 점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경제산업성이 전자상거래와 관련된 모든 일을 관장하는 반면 한국은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로 이원화돼있기 때문이다.
민간차원에서도 일본은 일본전자상거래추진협의회가 모든 업종별 전자상거래 관련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한국은 한국전자거래협회를 비롯 업종별로 관련업무가 분산돼 있다.
이러다 보니 일본은 하나의 업무를 놓고 어느쪽을 카운트파트로 삼아야 할지 고심해야 하고 관련 제도나 시스템도 중복돼 혼란스럽다고 푸념하고 있다. 실례로 소비자보호에 초점을 맞춘 일본의 온라인쇼핑 트러스트마크와 협력을 추진해야 할 대상이 한국의 e트러스트 마크인지 i세이프 마크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
또 다른 과제로는 한일간 전자상거래에 있어 일본은 수출우위국이고 한국은 수입국이라는 문제다. 전자상거래가 양국에 무역비용을 절감시켜주고 그에 따른 경쟁력 제고라는 이익을 실현시켜준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전자상거래가 자연스레 수출과 수입 확대를 야기시키고 이는 곧 무역역조 확대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무역역조라는 구조적 문제가 장차 양국간 협력에 심각한 고민거리로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유성호기자 shy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