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서울로부터의 비보
기업인·교수·언론인으로 구성된 남북IT교류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한 것은 지난 6일. 대표단은 이어서 10일까지 4박5일 동안 평양에 있는 민족경제협력련합회(민경련)·평양정보쎈터(PIC)·김일성종합대학 등을 직접 돌아보았다. 본 기획물은 대표단의 일원이자 IT전문기자로는 최초로 방북한 본사 서현진 논설위원이 직접 취재한 것으로, 앞으로 7회에 걸쳐 연재한다. 현장답사와 관계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직접 확인한, 정확하고 생생한 북한의 IT 실상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갈 것이다. 편집자
2월 5일 오전 10시, 서울발 베이징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나는 이번 방북 목적을 다시 한번 머리 속으로 정리해보았다. 첫번째는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북측과 단둥-신의주IT단지 조성 및 이를 운영할 남북합작사 설립 합의를 이뤄내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기자로서 북의 IT분야 실상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해 보겠다는 취재 계획이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보면 나는 비즈니스 협상에는 비전문가일 수밖에 없으므로 두번째가 더 큰 목적이라 할 수 있었다.
북의 실상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함은 결국은, 그래야만 남한 IT기업들의 진출이 시행착오 없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 나는 한달여의 방북준비 기간에 북의 IT 실상에 대해 대강은 감지하고 있던 터였다. 또한 IT교류 확대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또한 어떤 요소가 걸림돌(북쪽에 의해서든, 남쪽에 의해서든)이 되고 있는가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나의 취재는 베이징 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고 비자 신청을 위해 북한영사관을 방문하는 것부터 시작됐다.
베이징은 눈이 많은 도시라서 호텔에서 내려다 보면 이 곳이 사회주의국가라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북한영사관이 위치한 난다오가에도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그러나 영사관 주변은 또다른 세상이었다. 곳곳에 북한인들이 운영하는 약 20개의 상점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콤퓨터 눈검사」라는 안내판이 붙은 안경점이 10여곳이나 됐다. 상점들의 행색은 한마디로 을씨년스럽기가 그지없었다.
형광등 1개만이 달랑 켜져 있는 30여평의 영사관 로비는 난방조차 안돼 어둡고 음침하기조차 했다. 현관을 들어서면서 백두산 정상에서 생전의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이 나란히 서있는 예의 초대형 그림이 일행을 압도했다(나중에 보니 이 그림은 북한 관공서에 다 걸려 있었다). 40대 후반의 영사관 직원은 비자 발급을 신청하는 남한 사람을 자주 보아서인지 우리 일행을 보고도 별다른 반응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비자 발급은 30여분 만에 끝이 났다.
우리는 이어 곧바로 인근 고려항공 베이징 지점에 들러 평양행 비행기표를 신청했다. 하얀 피부에 수수하고 단정한 인상을 주는 여직원이 창구의 PC에서 윈도 카드게임을 즐기다가 우리를 반겼다. 티케팅도 마쳤으니 방북은 이제 내일(6일) 아침 베이징 수도공항에서 떠나는 평양행 비행기에만 오르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북측과 협의할 의제들을 최종 스크린하고 있던 중 서울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대표단 중 김부섭 큐빅테크 사장의 방북이 관계기관의 최종심사 끝에 불허된 것이었다. 대표단의 구성은 당초 이번 방북 협상의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문광승(하나비즈 사장), 안준모(건국대 교수), 김부섭, 송혜자(우암닷컴 사장), 송관호(한국인터넷정보센터 사무총장), 김철환(기가링크 사장), 이승교(허브메디닷컴 사장) 그리고 나, 이렇게 8명이었는데 7명은 서울을 출발하기 전 방북승인이 있었고 김 사장은 보류된 상태였다. 그렇지만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까지는 승인이 나는 것으로 낙관해 함께 베이징까지 온 것이었다. 불허 이유는 김 사장이 79년에 있었던 이른바 「남민전」 사건에 직접 관여돼 있어 요주의 인물로 분류된 까닭이었다. 서울로부터의 비보에 일행 중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그게 어느 시절의 일인데, 지금까지도….』 <계속>
<서현진 논설위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