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미래산업 정문술 회장의 은퇴를 지켜보면서 남다른 감회를 느낀 사람들이 많다. 그 중 한사람이 바로 한솔창업투자의 조병식 상무(44)다. 지난 95년 미래산업과의 첫 인연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만해도 불모지나 다름없던 반도체설비 분야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미래산업과의 첫 인연은 「육고초려」에서 시작됐다. 미래산업에 대한 가능성을 발견, 투자를 하기 위해 방문했지만 정 회장을 만나기는 고사하고 정문조차 통과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렸던 것이 무려 여섯번이다.
이런 노력끝에 당시 미래산업 자금부장과 인연을 맺게 됐으며 그 후 정문술 회장으로부터 개인적으로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해 듣고 정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구주인수부터 시작한 것이 미래산업에 대한 조 상무의 첫 투자였다. 이후 미래산업이 사업을 확장하는 가운데 필요한 모든 증자에 참여, 16억원을 투자했다.
미래산업의 성장가능성과 정 회장의 경영능력을 간파한 조 상무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 최고의 트랙 레코드로 남아있다. 2년 전에 투자회수에 성공한 자금만 무려 600억원에 달한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지분까지 고려한다면 850억원으로 투자원금 대비 무려 50배가 넘는 수익률을 올렸다.
조 상무가 벤처캐피털업계에 첫발을 디딘 것은 지난 88년 삼천리기술투자(현 서울창투)에서 프로젝트 심사와 사후관리 등을 맡으면서부터. 당시만해도 엔지니어 출신 심사역은 캐피털업계를 통틀어 3명에 불과했다. 이후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 창투사 암흑기를 거쳐 조 상무는 장은창투(현 국민창투)의 영업본부장을 맡으면서부터 투자에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투자했던 기업이 바로 미래산업, C &C엔터프라이즈, 우리기술, 바이오스페이스와 같은 기업들이다.
조 상무는 이후 스틱IT벤처투자 상무를 거쳐 지난 99년 8월 한솔창투 투자본부장으로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한솔에 입성하자마자 그는 주성엔지니어링·한국아스텐엔지니어링·인젠·인컴·넥스텍·디오시스 등 코스닥시장 등에서 주목받는 벤처기업들을 발굴하는 탁월한 감각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조 상무의 화려한 트랙 레코드는 조만간 해외에서도 결실을 맺을 전망이다. 지난해 초 20억원을 투자한 미국의 음성인식 전문업체 「컨버세이(Conversay)」가 올하반기 나스닥 상장을 추진, 최소 400억원 이상의 투자수익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 상무는 벤처캐피털리스트의 덕목으로 「지식」 「네트워크」 「경험」을 꼽는다. 컨버세이에 대한 투자도 네트워크의 힘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 상무가 후배 캐피털리스트들에게 당부하는 것은 「투명성」이다. 투명하지 않으면 일시적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실패하고 만다는 것이다.
『벤처투자에서 수익률과 투명성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투명성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정석이라고 생각합니다.』 14년 관록의 벤처캐피털리스트가 전하는 벤처투자 성공법칙이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