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회의 디지털세상 이야기>37회-원칙이 통하는 세상

분식회계가 요즘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들리는 말로는 적자폭을 줄이기 위해 아니 적자를 흑자로 바꾸기 위해 분식회계를 관행처럼 해온 기업들이 국내에 절반은 된다고 한다. 원칙을 덮고 변칙으로 일을 처리해 온 우리 사회의 잘못된 관행이 장부를 조작했고 결국엔 그로 인해 위기를 자초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일을 처리하면서 원칙을 강조하다 보면 많은 저항을 받는다. 원칙보다는 윗 사람의 뜻이 앞서다 보니 「괘씸죄」에 안걸리려고 항상 윗사람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원칙을 지키는 사람은 깐깐한 사람으로 따돌림받고 관례나 묵계 또는 편법적 집행을 일삼는 사람이 오히려 유능한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선진 기업일수록 원칙을 중심으로 경영된다. 그리고 그 원칙에 입각한 여러 규정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적용된다. 예컨대 사장이 쓴 경비까지도 내역이 불분명하거나 규정에 맞지 않으면 경리부 말단직원으로부터 가차없이 반려된다. 사장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내역을 보완한다. 감사에 문제가 없도록 지적해 준 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할 정도다.

이런 원칙들이 지켜질 때 기업은 투명성을 유지하게 되고 개인은 원칙에 입각해 소신껏 일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조직에는 모든 일에 예측이 가능한 문화가 형성된다. 일상 업무에서 되고 안 되는 것이 분명해진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규정된 원칙에 따라 움직일 때 업무 처리 속도는 오히려 빨라질 수밖에 없다.

원칙 중심의 기업들은 또한 과감하게 전결규정을 채택한다. 실무선에게 권한을 대폭 위임해 대부분의 일들이 실무선에서 즉각 처리될 수 있게 한다. 이런 기업에서는 중역들에게 결재를 받으려고 올라오는 서류들이 어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올라오면 이를 위험신호로 간주한다. 즉 실무자들에 대한 권한위임의 정도가 적정 수준으로 지켜지지 못한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결규정을 상향조정해 실무자의 권한을 높여주고 더 많은 업무가 실무선에서 처리되도록 한다.

이러한 문화가 정착돼 있는 곳에서는 전결권자가 일처리에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책임아래 일이 처리되기 때문이다. 만약 맡은 일처리에 자신이 없어 윗사람의 의견을 물어보면 스스로 처리할 문제를 왜 갖고 올라오느냐고 핀잔을 듣게 된다. 따라서 전결권자는 경험과 지혜를 짜내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반면 권한위임이 제대로 안된 조직에서는 권한위임의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대부분의 일에 윗사람이 직접 관장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윗사람 뜻에 따라 일을 처리한 실무선에서 지고 지시했던 윗사람은 책임을 면하는 부조리를 종종 보게 된다.

권한위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

다. 이해할 수 있다. 실수나 사고는 어디서나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위임된 권한에 책임감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실수는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물론 사후에 철저한 상호 체킹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고의성 사고일 경우 공정하고 엄격한 대응조치를 마련해 사고를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듯 원칙중심의 본래 목적은 일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처리속도를 높이고 질을 향상시키는 데 있다.

또한 원칙에 충실한 기업은 네트워크 기업으로서 경쟁력 향상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다른 기업과 함께 업무를 진행하면서도, 서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백한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기업간에 일하는 방식이 협업의 네트워크 상에서 투명하게 조성될 때 기업은 자신의 핵심역량에 더욱 집중하며 기타 업무들은 과감히 아웃소싱을 할 수 있게 되고, 결국 이를 통해 비용을 절감하고 업무의 효율을 높여 경쟁력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혈연이나 학연, 지연 등으로 얽힌 문화가 유난히 강한 우리나라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기업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원칙이 통하지 않는 기업에 진정한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원칙중심의 기업으로 변화하려면 위로부터 기득권을 포기하고 원칙을 따르는 용기있는 문화만들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 원칙이 통하는 세상, 원칙이 통하는 기업문화 만들기는 디지털 시대 성공을 위한 우리 모두의 숙제인 것이다.

김형회 바이텍씨스템 회장(hhkim@bite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