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1)e코리아 이끄는 산업의 원동력

「미래 제조업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현재 전세계가 정보사회로의 이행과 전자상거래(EC)시스템 구축에 여념이 없다. 우리나라 정부도 예정보다 2년 앞당겨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축키로 하고 이제는 여기에 어떤 콘텐츠를 실어보낼까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자상거래 관련 솔루션이나 다양한 콘텐츠 및 SW 개발을 제쳐두고 「IT제조업의 미래」를 얘기하는 것은 시류에 맞지 않는 듯 보인다. 지금도 한창 진행중인 제지·시멘트·방적 등 7대 전통산업의 구조조정 논의 과정에서조차 IT화, 또는 정보화가 얘기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시각을 조금만 돌려 첨단분야, 특히 IT제조업을 살펴보자.

인터넷인구 1900만, 무선인터넷인구 300만을 기록한 우리나라의 정보화는 과연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성하는 하드웨어가 루슨트니 시스코니 노텔이니 하는 외산 통신장비의 모자이크에 다름없다. 그만큼 디지털경제의 미래를 풀어갈 열쇠가 정보기술(IT)제조업의 건강 여부에 달려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2개의 IMT2000서비스 사업자를 선정한 마당에 정작 걱정되는 것은 시장구조개편보다 외산 장비 도입의 악영향이다. 국내에서 개발되지 않은 수많은 장비구입비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동원돼야 하기 때문이다. 서비스를 위해 사용되는 장비와 단말기를 외부에서 도입하는 것은 결국 국부의 유출이다. 물론 이는 IT서비스를 지원할 IT장비제조업이 없는 산업의 불안감과 비효율성을 암시한다.

디지털방송 실시도 마찬가지다. IT제조업계는 앞으로 실시될 디지털방송이 흑백TV에서 컬러TV시대로의 이행때 못지 않은 대체 수요를 몰고올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 상황으로 파급되면서 시장수요를 촉진하게 될 전망이다. 다행히 삼성전자·LG전자·대우전자 등 국내 가전업계가 3개의 국제디지털 TV규격을 갖춘 제품을 모두 독자 개발해 놓은 상황이지만 방송국에서 사용되는 희소성 높은 방송장비는 거의 모두라 해도 좋을 만큼 외산에 의존해야 할 판이다. 이처럼 정보사회 진입을 위한 기본을 얘기할 때 다양한 IT제조업 기반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이를 IT관련산업 육성의 절대적 이유로 내세우기에는 뭔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흔히 지적되듯 첨단 제조업에 늦게 참여할수록 높은 진입장벽을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규모는 연평균 120억달러에 달한다. IMT2000 장비설치비용에 못지않은 액수다. 특히 이 가운데 80%가 부품·소재라는 사실은 왜 부품소재를 비롯한 첨단 IT제조분야의 육성이 시급한지를 웅변해 준다.

개발하기 힘든 부품도 일단 상용화하면 독창적인 상품과 연계해 무궁무진한 판매 확대로 이어갈 수 있는 게 IT제조업이다. 소니가 광레이저다이오드를 개발하고 이를 바탕으로 CD보급을 확산시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소니는 레이저다이오드를 기반으로 한 엄청난 기술개발 노력의 대가로 세계 레이저다이오드시장에서 약 60%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한 거인이 됐다. 또 이 기술은 캠코더와 DVD라는 새로운 분야로 확산돼 일본의 IT제조업에 톡톡한 기여를 했다. 세라믹 분야의 거인인 일본의 교세라는 세라믹을 자동차배기가스 저감용 삼원 촉매장치로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소니 워크맨의 예처럼 오디오를 휴대형으로 만들자는 발상의 전환 결과를 세계적 상품이란 과실로 만들어낸 경우도 있다. 이는 최근 운용체계를 놓고 서로 싸우는 미국의 PDA제조 아이디어의 원류를 보여주기도 한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한 지 10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세계 전자산업계는 청색레이저다이오드라는 부품 개발에 여념이 없다. 기존 전구의 빛이 상당부분 열로 빼앗긴 데 반해 엄청난 빛에너지 효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의 상용화가 이뤄지면 흔히 사용되는 뉴스전광판이나 기존 전구를 대체하게 될 전망이다.

이처럼 IT제조업은 그 연구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성과의 활용에 따라 얼마든지 거대시장을 창출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IT제조업의 또다른 특징은 제조업의 일반적 특징에 더해 일단 진입한 기업은 엄청난 장벽효과를 통한 고부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신국환 산자부 장관이 지난해 말 첨단 부품·소재산업 육성책을 발표하면서 『우리나라가 중국과 일본에 끼인 어중간한 자리에 있다』고 말한 것은 이같은 상황을 잘 반영한다.

이미 IT제조분야의 조립기지를 벗어나 개발상용화를 향해 내닫는 중국, 그리고 전세계적인 IT제조 선진국을 걷는 일본이 우리 앞에 있다. 또 그동안 단순한 부품공급국으로만 여겨졌던 대만도 반도체·컴퓨터·TFT LCD 등의 분야에서 우리를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대만·중국이 우리를 따라오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도 발빠르게 산업의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

정부는 IT제조업을 위한 범부처적인 지원책을 강구해 최적의 분야에 자금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IT제조업은 어쩌면 기존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성과보다 더 우리나라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핵심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IT서비스는 고도의 지적인력과 그에 의한 생산적 서비스 활동, 그리고 이 서비스의 활용측면에서 이점을 찾을 수 있다. 반면 경쟁력 갖춘 IT제조업은 지속적인 생산활동 결과 국제적 교역을 통한 국부축적에 더 큰 기여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IT제조업 육성을 위해서 정부는 IT정보화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에 내는 통행세로 인식하고 집중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IT제조업은 많은 자본과 기술집약적이며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는 분야도 적지 않다. 그만큼 IT산업의 육성을 위해 SW산업과 함께 HW산업인 IT제조업간 균형책이 요구되고 있다.

산자부·과기부·정통부 등 IT제조업의 기반과 정책 및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부처간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같은 범정부 차원의 인식과 지원이 없다면 IT정보화의 미래를 받쳐줄 IT제조업 기반까지도 외국의 손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외국의 고부가 IT제품을 구매하는 비용조달 문제를 비롯해 언제까지나 외산에 높은 비용의 IT상품을 의존해야 한다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힘들게 될 것이다.

후발 공업국인 중국과 비슷하게 쫓아온 대만을 추격속에 70년대 수출드라이브시절의 제조업르네상스는 이제 IT분야에서 찾아야 한다.

시장은 나노기술, 세라믹기술, 태양전지기술, 자동차 환경관련기술, 음성인식기술 등에서 IT제조업과 관련된 무궁한 창의적 개발 성과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IT제조업계는 이제 과감한 자본투입과 기술혁신으로 우뚝선 독일·일본·미국의 선진 IT제조업체를 보며 신발끈을 조여야 한다.

<이재구기자 j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