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아태지역 IT의 허브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정보기술(IT)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 20일과 21일 이틀간 싱가포르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정보기술(APIT) 포럼은 인터넷과 e비즈니스 물결로 요동치는 아태 IT시장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이번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한 각 나라의 IT리더와 최고경영자들이 대거 참석해 「e아시아·태평양:도전과 기회」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국에서도 20여명의 IT전문가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APIT포럼의 의미, 아태시장 현황과 전망, e아시아 구축을 위한 협력방안 등을 주제로 현지에서 좌담회를 개최했다. 3시간 동안 진행된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그동안 아태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일본에 비해 진출이 더딘 게 사실이었다』며 우리나라가 아시아지역에서 IT정보 유통의 중심지, 정보 네트워크의 허브로 위상을 갖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아태지역을 다시 봐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이날 좌담회에서 나왔던 토론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했다. 편집자
◇참석자 =설정선 정보통신부 부이사관, 신일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사, 권영일 한국전산원 선임연구원, 오덕환 한국IDC 사장, 이석우 펜타시큐리티 사장, 유진섭 삼성아시아 IT팀장, 정좌령 현대정보기술 기술기획팀장, 장길수 전자신문사 차장(사회)
◇장소 =싱가포르 리츠칼튼호텔 비즈니스 센터
-아태지역의 수출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설정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다른 국가와 IT 교류를 위해 정부는 다각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각국 정통부 장관과의 회담을 통한 협력방안이다. 정부는 올 상반기 일본과 중국에 이어 10월경 베트남·인도 장관과 잇따라 만나 기술과 인력 교류에 대해 집중 논의한다. 또 실리콘밸리에 있는 「아이파크(I-PARK)」와 같은 해외 지원센터를 4개 지역에 추가로 설치키로 했다. 다음달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4월 미국 동부, 6월 영국, 8월 중국 상하이에 지원센터를 개소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한국을 아태지역의 정보 네트워크 허브로 만든다는 전략이다.
◇정좌령 =동남아 시장에서는 국가 인프라와 관련한 솔루션 수요가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도움과 업체의 시장개척 의지가 맞물린다면 우리 제품도 충분한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다른 아태지역 국가에 비해 먼저 정보화 인프라를 구축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고 싱가포르를 중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대만·홍콩 등을 진출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활용한다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 미국과 일본 못지 않게 동남아 시장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신일순 =한국은 아태지역 다른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정보화를 추진해 왔다. 이 때문에 그동안 주요 수출 목표 지역은 일본이나 미국이었다. 이제는 전방위 수출전략이 필요할 때다. 아태지역 국가는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깝고 문화나 비즈니스 풍토가 비슷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솔루션 운용 기술면에서 이들보다 크게 앞서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과 솔루션 운영, e마켓 마케팅 노하우를 무기로 시장 개척에 나서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또 경쟁 상대로 이들을 바라보기보다 공동으로 전체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데 주력한다면 큰 수출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유진섭 =싱가포르가 IT나 정보화 분야에서 벤치마킹하는 나라가 한국과 대만이다. 그만큼 한국의 IT산업과 기술 수준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또 싱가포르는 하드웨어 분야의 경우 우리나라에 비해 2∼3년 앞서 있지만 시스템 운용 노하우와 관리 능력은 5∼6년 뒤처지고 있다는 게 현지에서의 분석이다. 국내 업체가 이 분야를 집중 공략하면 일본이나 중국에 못지 않은 수출 성과를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태지역의 시장과 정보기술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나.
◇권영일 =최근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호주 등 아태지역 IT업계에서 주목받는 신기술 중 하나가 ERM이다. ERM은 CRM의 다음 단계로 CRM이 수준 높은 고객 위주의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ERM은 이를 뛰어넘어 엔터프라이즈, 즉 기업 차원에서 통합적인 고객 서비스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태동했다. 동남아지역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한 솔루션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유진섭 =90년대 초반에는 IT기술을 통해 어떻게 생산과 판매를 효율화할지가 주된 관심사였다. 이어 중반에는 고객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IT기술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어 최근에는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최종 소비자와 관련한 서비스를 극대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ERM도 이 같은 배경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ERM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CRM이, CRM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ERP가 완벽하게 구축돼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오덕환 =IDC 조사에 따르면 5년 전만 해도 한국은 단연 소프트웨어·하드웨어와 통신서비스를 모두 포함한 IT시장 규모면에서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이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고 중국·호주가 그 뒤를 쫓고 있다. 한국은 이미 3위권 밖으로 밀려났으며 인도 등 신흥 IT국가에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 이제는 탄탄한 인프라를 기본으로 어떻게 부가가치를 만들 것인가를 정부와 기업 모두 고민해야 할 때다.
-다른 아태지역 국가와의 교류 협력방안은.
◇이석우 =단순한 IT교류만 추진해서는 큰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교류가 이뤄질 때 자연스럽게 IT분야도 서로 협력할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IT인력 수급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다른 나라와의 기술인력 교류를 통해 해결점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른 나라와 활발한 IT 교류를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폐쇄적인 문화나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
◇오덕환 =파트너십이다. 최근 IT분야에서 두드러진 경향의 하나는 기업 경쟁력을 위해 기업끼리 제휴나 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서로 부족한 분야를 보완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아웃소싱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잡으면서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사고는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가 되었다. 우리 기업도 다른 아태지역 국가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유진섭 =한국 업체는 글로벌 휴먼 네트워크가 취약하다. 이 때문에 누구나 글로벌 비즈니스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성과를 내는 기업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다. 휴먼 네트워크는 단순히 국내 비즈니스뿐 아니라 해외 비즈니스에서도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제는 우물 안 개구리식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국제 무대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네트워크를 높여 나갈 시기라고 생각한다.
◇설정선 =우선 일본과는 우리가 기술과 아이디어를 내고 일본이 자본을 지원한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본다. 일본도 우리의 앞선 정보 인프라와 인터넷·전자상거래 비즈니스 모델의 우수성을 인정하고 있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또 상대적으로 소프트웨어 인력이 풍부한 인도와는 IT인력 교류에 적극 나서는 상황이다.
-이번 APIT포럼의 성과는 무엇인가.
◇권영일 =이번 APIT 포럼에서는 정책·전략·비즈니스 모델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선 e커머스와 m커머스에 이어 「u커머스」 시대가 떠오르고 있다는 주장이 인상적이었다. u커머스는 유선 인터넷망을 통한 전자상거래 위주의 e커머스와 모바일 인터넷 비즈니스 위주의 m커머스를 아우르는 말로 전세계 네트워크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단말기에 관계없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전자상거래가 가능한 시대를 말한다. 또 마켓플레이스 전망과 관련해서는 인수합병을 통해 대형 e마켓이 등장하고 이와 함께 틈새시장을 겨냥한 중소 규모의 e마켓이 공존할 것이라는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이석우 =이번 포럼에 참석하면서 우리는 다른 아시아·태평양 국가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싱가포르를 축으로 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는 이미 하나의 디지털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반면 우리는 비즈니스면에서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국가에 지나치게 경도돼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들 국가와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e아시아 건설에 공동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오덕환 =싱가포르는 이미 아시아·태평양 국가를 서로 연계하는 「허브」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 포럼에서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참여도가 높다는 것이 이를 실증적으로 입증해 준다. 유수의 다국적 기업도 한국에 들어오기에 앞서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먼저 진출해 아시아 시장의 성공 여부를 타진할 정도로 싱가포르가 아태지역에서 차지하는 지리적 비중은 높다. 한국도 싱가포르를 허브로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IT시장을 개척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