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2)주요 경쟁국 동향-일본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은 21세기 최대 산업인 전자·정보통신 분야에서 미국 다음가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특히 기기 생산에서는 전통의 제조업 강국이라는 이미지에 걸맞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본의 전자·정보통신공업 생산액은 지난해 23조엔(약 270조원) 정도로 미국(약 380조원)에는 뒤졌지만 우리나라(약 97조원)보다는 3배 가까이 많았다. 올해도 일본은 약 28조엔을 생산, 우리나라(약 108조원)와의 격차를 비슷하게 유지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 면에서 일본이 이처럼 우리나라를 크게 앞서는 것은 수출에서의 차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대량 생산을 흡수할 정도로 큰 내수 시장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전자·정보통신 시장은 올해 1550억달러로 세계 전체(1조810억달러)의 14.4%를 차지하며 2위 자리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40%(4270억달러)를 차지하는 미국과는 3배 이상의 격차를 나타내지만 2.6%(270억달러)와 2.1%(220억달러)의 점유율로 각각 8위와 10위에 오르게 될 우리나라와 대만에 비해선 5배 이상 크게 앞선다.

또 일본이 생산 기술, 특히 기반 기술에서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비교 우위에 있는 점도 이 나라 전자산업 부흥의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세계 경제가 단일화돼 가고 제품의 사이클도 매우 짧아지는 등 「속도」를 생명으로 하는 새로운 경쟁환경이 펼쳐지면서 산업 전반에 걸쳐 우리나라에 비해 우위에 있던 일본의 경쟁력에 다소 변화가 생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일부 디지털AV기기, 반도체, 액정표시장치 등 몇 개 분야에서는 한일 경쟁력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거나 오히려 일본이 추월을 당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가전 분야>

일본 가전업계의 생산체제는 어느 정도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맞게 새롭게 정비된 상태다. 크게는 국내 생산으로는 경쟁이 되지 않는 아날로그 제품은 해외로 이관하고, 국내는 고부가 제품이면서 기술력도 받쳐줘야 하는 고기능 디지털 제품으로 특화해 놓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보면 TV는 디지털TV와 벽걸이TV, VCR는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나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를 매체로 하는 기기 등으로 무게 중심을 완전히 옮기고, 디지털캠코더·디지털카메라·비디오게임기 등 사실상의 독점 분야는 자국 생산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국내 산업 공동화와 기술 유출에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가전 최대 분야가 될 것으로 주목되는 디지털TV에서 일본 업체는 지난해 12월 시작된 일본의 방송위성(BS) 디지털방송을 계기로 생산을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마쓰시타전기산업이 선두를 달리고 그 뒤를 히타치제작소와 소니 등이 바짝 따라붙고 있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지난해부터 디지털TV 보급이 활기를 띠고 있는데 LG전자의 미국 자회사인 제니스가 원천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VSB가 표준 방송기술로 사실상 확정돼 한일간 경쟁에서 우리나라의 선전이 예상된다. 그러나 다른 방송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유럽에서는 브랜드력이 높은 소니 등 일본이 우위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본격적인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되는 벽걸이TV에서는 일본업체들이 보급 가격의 기준이 되는 「인치당 1만엔」에 가까운 제품을 연초부터 속속 내놓으며 기선을 제압하고 있다. 특히 샤프는 1월과 2월에 걸쳐 종전 가격의 60% 수준으로 낮춘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TV 3기종을, 히타치제작소에서는 종전의 절반 정도로 가격을 내린 32인치형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를 내놓아 관심을 모으고 있다.

VCR를 대체해 가고 있는 DVD플레이어는 이미 본격 보급기에 들어서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일본과 우리나라 업체간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파이어니어·마쓰시타·소니 등 주요 업체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해외 생산을 늘리며 가격경쟁력을 제고하는 한편 고쳐쓰기 기능을 탑재한 고성능의 DVD플레이어 등 고부가 제품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가고 있다. 도시바 등 일부 업체에서는 HDD를 기록매체로 하는 새로운 영상녹화기를 상품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카메라와 디지털캠코더에서는 일본의 우위가 현저하다. 소니를 비롯해 후지사진필름·올림퍼스광학공업 등 3개 업체는 디지털카메라에서 선두 그룹을 형성하며 세계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 장악하고 있다. 디지털캠코더(방송국용 포함) 역시 소니와 마쓰시타 등이 세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밖에 차세대 가정용 인터넷 단말기의 주력으로 기대되는 비디오게임기도 소니와 닌텐도 등 일본 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일본의 가전 산업 생산은 지난해 2조1706억엔으로 99년 대비 7.8% 확대됐고, 올해는 7.7% 늘어난 2조3383억엔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컴퓨터 및 통신기기>

컴퓨터와 통신 산업에서 일본만큼 표준 규격에 대한 한(恨)을 갖고 있는 곳도 없을 것이다. PC에서는 애플컴퓨터와 같은 고성능의 독자 규격 제품에 주력하다가 세계 시장과 담을 쌓았고, 휴대폰에서는 유럽 방식인 GSM에 국제 표준 자리를 빼앗겨 세계 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일본 PC 시장이 IBM호환 기종으로 주류가 바뀌면서 일본 업체들은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서고 있고, 휴대폰에서도 차세대이동통신인 「IMT2000」를 계기로 만회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컴퓨터 최대 분야인 PC에서 일본은 노트북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도시바는 IBM·델컴퓨터 등과 시장점유율에서 1%포인트 정도의 근소한 차이를 보이며 정상을 다투고 있고, 신규 진출한 소니는 가전 제조기술을 접목한 노트북 「바이오」를 내세워 선두권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데스크톱에서는 NEC 등 최대 업체가 LCD 모니터에 DVD램 등을 갖춘 고가 제품 중심으로 생산을 집중, 국내 시장을 적극 공략할 뿐 미국 등 해외 시장 진출에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무선을 중심으로 한 통신에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일본 업체들의 해외 시장 공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자국과 유럽이 같은 기술 규격을 채택함으로써 단일 시장을 형성하게 되는 3세대(3G) 이동통신 「 IMT2000」을 계기로 2G에서의 부진을 만회, 노키아·에릭슨 등 유럽세가 주도하고 있는 세계 통신시장 질서를 다시 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마쓰시타통신공업·미쓰비시전기·산요전기·샤프 등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은 NTT도코모의 휴대폰 인터넷서비스인 「i모드」에서 축적한 차세대 기술을 내세워 유럽 시장 공략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는 5위 마쓰시타통신(시장점유율 5%), 6위 삼성전자(4.8%), 8위 미쓰비시(3.4%) 등 한일 업체가 3위권 진입을 목표로 경합하고 있다.

컴퓨터와 통신을 합친(산업용 전자기기) 일본의 생산은 지난해 12조523억엔으로 99년대비 4.7% 증가했고 올해는 12조5037억엔으로 3.7% 늘 것으로 전망된다.

<전자부품>

반도체·액정·전지 등 3대 디바이스를 포함한 전자부품에서 일본은 우리나라와 대만의 끈질긴 추격에 대응해 품목 다양화와 기술 고도화로 버티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일본 업체들은 D램에서 우리나라 업체의 추격과 대만의 신규 진출이 가시화된 90년대 중반부터 플래시메모리·불휘발성메모리 등의 비중을 높여 메모리 사업의 채산성 저하에 대처하고 있다. 또 대규모집적회로(LSI) 등 고부가제품을 강화해 수익 구조를 개선해 왔다. 이런 대응 전략으로 도시바와 NEC는 지난해 삼성전자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 D램 분야에서의 부진에도 불구, 반도체 전체 업계 순위에서는 미국 인텔에 이어 2, 3위에 올랐다.

브라운관을 대신해 디스플레이의 주력으로 떠오르고 있는 평판디스플레이에서도 양상은 비슷하다. 가격경쟁이 극심한 TFT LCD에서 일본은 저온폴리실리콘 제품 등 고성능의 고부가 타입 비중을 높이며 채산성 저하에 대처하고 있다. 또 소니·산요전기 등 일부 업체는 유기EL 등 차세대 제품 개발 및 상품화를 서두르고 있다.

반도체와 LCD에 비해 전지는 일본의 안전지대다. 특히 리튬이온전지 등 소형 2차전지 시장은 소니·산요전기 등 일본 업체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의 전자부품 생산은 지난해 11조6899억엔으로 99년대비 6.8% 늘었고, 올해는 12조9162억엔으로 10.5%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