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각 부처의 업무보고

이현덕 논설실장 hdlee etnews.co.kr

시작은 거창한 데 결과가 시원찮을 때 흔히 용두사미(龍頭蛇尾)라고 말한다. 이 말의 유래는 이렇다. 송나라 용흥사라는 절에 진존숙이란 고승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승려가 찾아왔다. 『어디서 오셨소』 그말이 떨어지자 승려는 느닷없이 『으악』하고 고함을 질렀다. 당시 스님들은 만나면 선문답을 주고 받았던 것이다. 진존숙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허허. 한방 먹었군』 그러자 승려는 또 『으악』하고 목청을 높였다. 진존숙이 승려를 살펴보니 수행의 정도가 낮았다.

『으음. 아직 부족함이 많군. 머리는 용인데 꼬리는 뱀이군. 한마디로 용두사미로군』 송나라 환오극근이란 이가 쓴 벽암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요즘 정부 부처들의 업무보고가 한창이다. 장관들이 대통령에게 올 한해동안 부처별로 역점을 두고 추진할 각종 정책의 청사진을 보고하는 그런 자리다. 보고대상은 재경부, 정보통신부 등 18개 부처와 5개 장관급 위원회 등 모두 23개 기관이다. 정부통신부는 지난 19일, 문화관광부는 14일. 과학기술부는 10일, 그리고 산업자원부는 1월 10일 각각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마친 상태다. 나머지 부처들도 일정에 따라 업무보고할 예정이다.

올해 업무보고는 예년에 비해 다른 점이 있다. 예년에는 대통령이 직접 각 부처를 순시해 업무보고를 받았지만 올해는 각 부처 국장급 이상의 간부가 청와대로 들어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또 대통령이 토론위주로 회의를 진행해 참석자들과 활발한 의견 교환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부처별 업무보고 형식은 비슷하다. 해당 부처가 추진했던 지난해 정책의 성과를 간략히 평가하고 올해 정책추진 방향과 중점 추진과제 및 실천방안 등을 보고한다.

이미 업무보고를 끝낸 IT산업 유관 부처의 공통점은 21세기 새로운 국가발전을 위한 지식과 정보기반 구축에 역점을 두겠다는 점이다. 보고한 IT관련 중점 추진과제를 보면 지식정보기반의 활용 촉진, IT산업의 적극 육성, 정보통신 서비스 경쟁력 강화, 올해를 생명공학의 해로 선포, 첨단·전통산업기술의 균형발전, 고급두뇌 양성, IT와 생물산업, 신소재·극미세기술, 시에너지·환경 등 4대 신산업 육성, 콘텐츠 산업 육성, 남북교류 등 다양하다. 문화관광부는 특별정책과제로 자본금 5000억원 규모로 문화콘텐츠 산업육성을 위한 코리아@뮤지엄이라는 회사를 설립키로 해 주목받고 있다. 모두 기대를 갖게 하는 정책과제들이다.

이같은 정책과제가 제대로 추진되려면 과거 시행정책에 대한 냉철한 자가진단이 필요하고 그 바탕위에서 발전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각 부처는 지난 정책에 대한 진솔한 자기반성에 인색했다는 느낌이다.

그것은 각 부처가 지난날 시행한 정책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각 부처는 예외없이 지난 정책에 대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거나 『당초 계획을 초과 달성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물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정책도 있다. 또 모든 정책은 목표를 초과달성해야 해당 산업이나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시장여건이 바뀌거나 기술추세의 급진전 등 외부여건 변화로 불가피하게 목표에 미달하거나 정책혼선 또는 실패를 불러올 경우도 있다. 그런 것에 대한 문제점 분석과 자기 성찰없이는 올바른 대안을 내놓기가 어렵다.

다음은 정책의 연속성과 예산확보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장관이 바뀔 때마다 오락가락하거나 예산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구두탄으로 변한다. 예산이 없으면 「말 따로 실천 따로」의 전시행정에 그치고 만다.

또한 IT산업과 관련해 부처별 업무의 중복 여부와 원활한 업무 협조체계 구축이다. 가령 전자정부 구현이나 전자문서유통 확대, 조달업무 전산화, 의료부문 전산화 추진, 교통정보, 생활지리정보 지원, 생명공학 육성, 콘텐츠 산업 육성 등은 부처간 협의나 협조가 필요하다. 자칫 잘못하면 중복투자로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정책 혼선을 가져올 가능성이 놓다.

이번 업무보고는 장관들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하다. 조만간 개각을 앞두고 있어 업무보고에 대한 평가가 장관직 유임이냐 경질이냐를 결정짓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수확의 법칙은 정책에도 적용된다. 과연 각 부처 장관들은 올 업무보고 내용을 어떻게 실천해 정책의 수확을 거둘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