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2)반도체:삼성전자 기흥공장

기흥 톨게이트를 나와 역 U자로 꺾으면 탁 트인 큰 길이 나온다. 페달을 힘껏 밟으려 할 때 아쉽게도 오른쪽에 큰 공장이 나온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생산단지인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다.

삼성전자로 가는 새 길은 2년전에는 없었다. 예전에는 꾸불꾸불한 왕복 2차선 도로를 따라가야 했다.

신설 도로를 쭉 따라가면 삼성전자 가전공장으로 이어진다. 경기도와 용인시가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한 삼성전자를 위해 만든 도로라고 한다. 대기업이 지역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도로는 말없이 보여준다.

단지에 이르기 전 왼쪽에 초대형 골프연습장이 있다. 그 앞에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피트니트센터 등 연구원들이 체력을 단련하라고 조성하는 건물이다.

삼성전자 기흥 단지에 들어가 봐도 세계 최대의 반도체 공장임을 실감할 수 없다. 키 큰 건물 몇개만 덩그라니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는 세계 D램의 5분의 1을 생산해내는 곳이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은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하겠지만 삼성전자의 칩과 같이 있다고 봐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40만평의 부지에 조성된 이 반도체단지는 92년 이후 8년 연속 세계 D램 시장을 평정한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심장부다.

기흥 단지는 늘 조용하다.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지면 하루에 세번 있는 교대시간이다.

이 곳의 생산라인은 1년 12달,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간다. 한번 가동을 멈췄다가는 막대한 손실이 생겨 가동을 멈출 수 없다.

때문에 기흥단지는 하나의 도시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곳에서 먹고 잔다. 사내 대학도 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대학원 과정을 마련해 반도체 인력들이 실력을 더욱 연마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삼성전자의 반도체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어떻게 됐을까」라고 말한다. 그만큼 반도체는 국가 경제의 기둥이 됐다. 그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게 바로 기흥단지다.

17년전 기흥공장이 조성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이 공장과 함께 살아온 이윤우 반도체 총괄 사장은 곧잘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격렬하게 토론하고 밤샘하던 시절」을 회고하곤 한다.

기흥단지는 지난 92년 64Mb D램을 세계에서 처음 개발한 이후 올해 4기가D램 기술을 개발하기까지 10년 동안 세계 첫 개발 기록을 지켜왔다.

처음에는 삼성전자의 신기술 개발에 흥분했던 언론과 국민들도 이제는 심드렁한 반응이다. 『삼성전자가 처음 개발한 게 뭐가 뉴스냐』고 되레 묻는다.

이 곳 연구원들은 『극한 기술에 다가가면서 신기술 개발이 갈수록 힘든데 국민들이 너무 몰라주는 것 같다』며 조금은 속상해했다. 그래도 세계 반도체기술을 선도한다는 자부심 때문에 연구원들은 묵묵히 자기 일에 몰두한다. 4기가 D램 기술을 발표한 직후인 지난 10일 토요일에도 기흥단지는 여전히 차분했다.

기흥단지는 세계 D램 반도체 개발의 산실이면서 동시에 TFT LCD 개발의 중심지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8월 기흥단지에 300억원을 투자해 「TFT LCD 미래연구소」를 개소했다.

지상 7층, 연면적 5400평 규모의 이 연구소는 기초부터 응용까지 TFT LCD에 대한 모든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소 곳곳에 영원히 세계 1위를 지켜가겠다는 삼성전자의 「무서운 야심」이 배어있다.

기흥단지는 또 지난해에는 분신을 만들었다. 삼성전자는 기흥단지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화성 지역에 30만평 규모의 제2단지를 조성했다. 128Mb, 256Mb 등 대용량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10라인이 이미 가동에 들어갔으며 11라인도 구축중이다. 앞으로는 300㎜웨이퍼 신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내년까지 온양공장에 비메모리 반도체 전용라인을 새로 신설할 계획이다. 비메모리반도체로는 거의 10년 만의 신규 투자로 메모리뿐만 아니라 비메모리 반도체에서도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기흥단지가 오늘의 「삼성 반도체 신화」를 이뤘다면 화성단지와 온양 비메모리 신규 공장은 미래의 신화를 만들어갈 곳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반도체 시장이 침체되면서 세계 반도체 업체들은 위기를 겪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투자를 축소하고 있으며 심지어 인원을 감축하는 기업들도 나오고 있다.

국내 업체도 예외는 아니어서 현대전자는 창업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끄떡없어 보인다. D램 가격의 하락에도 불구 지난해 일찌감치 대용량 제품으로 생산구조를 개편해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램버스 D램과 S램, 플래시메모리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해선 공격적인 경영으로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벌려 놓고 있다.

TFT LCD사업도 가격 하락으로 수익이 격감했으나 적자 판매에 들어간 경쟁사들에 비하면 느긋한 편이다. 비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투자도 예정대로 진행된다.

그 비결이 뭘까. 이윤우 사장은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짚어 이상적인 64MD램의 호황에도 흔들림없이 수익성 높은 제품 위주로 대비를 철저히 해왔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용인시와 화성군을 잇는 삼성전자의 「기흥밸리」는 온양시까지 이어져 대면적을 이룬다. 여기에 현대전자의 이천 공장까지 연결하면 중부권에 말 그대로 「실리콘밸리」가 형성된다. 곳곳에 반도체 장비와 재료 업체들이 대거 밀집했다.

이 「실리콘밸리」는 한국 경제의 대동맥이다. 그 한복판에 삼성전자가 있다.

<신화수기자 hsshi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