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0년째 MBC마당놀이의 터줏대감 노릇을 해온 재담꾼 김종엽씨는 요사이 설레는 마음에 밤잠을 설친다. 윤문식, 김성녀씨와 함께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여온 그의 마음을 사춘기 소년처럼 들뜨게 한 건 바로 3월 개국하는 국악 FM방송 때문이다.
가장 기대되는 오락 프로그램 중 하나인 「우면동 상사디야」의 MC를 맡은 그로서는 딱딱하게만 인식돼온 국악을 어떻게 재미있고 편안하게 전달하느냐가 큰 고민거리다.
그날의 시사 뉴스를 유쾌한 해학을 곁들여 풀어가는 「요란굿 법석굿」에서부터 「놀보 가라사대」 「어떻게들 살았대유」처럼 제목부터 정겨운 코너들이 이 프로그램 안에만 10개 넘게 들어차 있는 것만 봐도 고심의 흔적이 역력하다.
김종엽씨와 국악인 김영화씨가 생방송으로 진행할 이 프로그램은 예상치 못했던 대목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우리가락 모창이나 걸쭉한 재담으로 청취자들을 즐겁게 해 줄 예정이다.
「우면동 상사디야」는 국악방송이 야심차게 준비중인 10여개 프로그램 중 하나다.
비단 힙합과 댄스에 물든 젊은 세대뿐 아니라 기성세대에게도 생경한 국악이다보니 우선 쉽고 친근하게 대중들에게 다가가자는 것이 국악방송의 다짐이다.
재미있는 해설로 어린이들에게 우리 음악을 가르치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우리네 주변 삶을 편지참여 코너 등을 통해 진솔하게 표현하는 「세상사는 이야기」 등이 모두 이런 생각에서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이다.
하지만 국악이 지닌 깊이와 참맛을 충실히 담아낸다는 품위도 잃지 않는다. 새벽 5시, 명상음악으로 상쾌한 아침을 열어주는 「솔바람 물소리」, 우리 음악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우리가락 배워보세」 등은 삭막한 도시의 번잡함을 잠시 잊게 해주는 청량제 역할을 한다.
국악방송은 우선 10여명이 조금 넘는 최소 인원으로 소박하게 출발할 예정이다.
국악방송이 예술의 전당옆 국립국악원에 둥지를 틀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던 까닭에 국악인을 비롯한 청취자들이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98년부터 국민의 정부 100대 과제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재원확보 문제로 푸대접을 받았던 국악방송의 현실은 국악을 바라보는 대중의 무관심한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이제 3년 만에 알을 깨고 나오는 국악방송의 미래는 일반 청취자들의 호응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동안 대중과 유리돼 있던 국악을 일상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돼 있다』며 멋쩍은 듯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김종엽씨의 각오 속에는 이같은 염원이 배어 나온다.
귀를 고급스럽게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녹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주파수를 99.1㎒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 『얼쑤!』하고 내뱉는 추임새 소리에 잠들었던 봄마저 깨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유경기자 yuky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