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취재기- IT가 희망이었네!>7회-끝/풀어야 할 과제

2월 8일 오후 북측은 남측 대표단이 제안한 단둥-신의주 IT단지 조성과 관련한 8개항을 모두 수용함으로써 협상은 쉽게 끝났다. 계약서 중 북측의 요구를 수용한 대목도 있지만 진통이 예상됐던 핵심 제안내용을 북측이 이렇게 쉽게 받아들이라고는 누구도 예상을 못했었다.

IT단지를 운영할 IT합작회사를 6 대 4의 비율로 4월까지 설립하고 북측은 단둥과 신의주 지역에 단계적으로 400명의 기술인력을 파견하며 남측은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건물과 설비를 제공한다는 것이 계약의 골자였다. IT단지 조성과 운영을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 남측의 기가링크와 우암닷컴이 평양정보쎈터(PIC)내에 초고속망 및 영상체계를 구축해주며 큐빅테크가 컴퓨터이용제조시스템(CAM)의 공동 개발과 기술 협력을 수행하기로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8개항 가운데는 전자신문과 통일IT포럼에 관한 부분도 있는데 IT관련서적의 교류와 남북 IT기업 및 기관의 상호초청사업과 소프트웨어의 공동 판매를 주선하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계약서에 대한 사인은 9일 오후 5시에 이뤄졌다. 계약 직전인 9일 오전 남측 대표단은 방북 후 처음으로 평양시내 관광에 나섰다. 홀가분한 마음이려니 했는데 막상 나서 보니 기분이 그렇지가 못했다.

실질적으로 협상을 이끌었던 문광승 하나비즈 사장은 시내관광중 협상 때보다 오히려 얼굴이 더 상기돼 있었다. 요모조모 따져 명분과 실리를 함께 추구할 것으로 예상됐던 북측이 오히려 남측과의 교류사업을 적극적으로 밀어부치자 그도 의외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협상과정에서 나타난 북측의 자세는 분명 명분보다는 실리쪽을 택하겠다는 쪽이었다. 이는 그만큼 IT분야에 대해 북측이 다급해져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볼 수도 있었다. 문 사장도 『이제 공은 우리쪽으로 넘어왔다』며 일단의 심정을 표현했다. 북측의 이같은 적극성을 어떻게 남쪽 기업가들이 원하는 수준으로 포장할 것인가 하는 것이 이제부터의 과제라는 뜻이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표단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앞서 여러번 언급했듯이 북쪽은 IT장비나 시설면에서 남쪽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인 것만은 사실이었다. 기술자들도 남측 기술자 못지않게 역량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전반적인 환경은 분명 세계적인 기술흐름이나 추세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었다. 게다가 북쪽의 IT환경은 최신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인터넷에 대한 접근이 거의 불가능했고 지식을 체계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전문서적들도 절대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대로 놔둔다면 남과 북의 격차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컴퓨터와 같은 전략물자 반입을 규제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문제도 일정부분은 남쪽에서 풀어줘야 할 과제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북 제제는 이번 계약서 내용 중 『북측 컴퓨터 이용에서 제기되는 윈도 로케일 아이디(Locale ID) 등의 문제 해결에 (남측이) 협력해줄 것』을 명기하고 있는 대목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북측은 현재 미국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윈도를 조선글화하거나 개작할 수 있는 국가ID를 부여받지 못해 응용개발환경이 크게 제약을 받고 있는 등 저작권 문제에 직면했다고 한다.

10일 아침 평양을 떠나 베이징으로 향하는 비행기속에서 나는 이번 방북을 결산하며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남북합작사 설립에 대한 합의는 IT교류협력사업의 물꼬가 트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1차적으로 남과 북이 동일선상에서 대화할 수 있도록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마련해주는 일이 돼야 할 것이다. 전문서적들을 보내 북측으로 하여금 남측의 문화나 기술수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거나, 국가 아이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시급하고도 유효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일 것이다.

남북 IT협력사업은 결국 당장 이익을 구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익을 구할 수 있는 토대를 먼저 구축하는 것이 그 성패를 좌우하게 될 것이다.

끝으로 나의 방북취재기가 북쪽에 진출하려는 남측 기업들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을 독자 여러분께 감히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