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은 살아있다>(2)전문 CEO 시대

그동안 일부 대기업이나 닷컴기업 등 일부 업종의 전유물로 간주됐던 전문 최고경영책임자(CEO) 시대가 제조업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보기술(IT)이 국가·기업·가정 등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우리 경제도 빠르게 디지털 경제로 전환, CEO의 전문성이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제조업계에도 최근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전문 CEO 영입 붐이 일고 있다.

전문 CEO 시대가 열린다는 것은 그만큼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투명한 경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문 CEO 붐은 특히 제조업체들의 투명경영을 정착시킴으로써 디지털 경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생력을 높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실 선진국 기업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전문 CEO 체제를 도입해 수많은 성공사례를 낳았다. 그 중에서도 미국 HP의 칼리 피오리나와 GE의 잭 웰치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칼리 피오리나는 지난 99년 7월 HP CEO에 취임한 이후 이 회사를 컴퓨터 제조회사에서 e비즈니스에 관한 모든 솔루션을 제공하는 인터넷 회사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취임 후 「e서비스」를 회사의 핵심전략으로 채택하고 인터넷 전자상거래라는 흐름에 초점을 맞췄다. 이를 통해 HP는 컴퓨터 관련 제품판매뿐만 아니라 e비즈니스와 관련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 HP를 세계적인 인터넷 기업으로 변신시켰다.

잭 웰치 역시 재임기간에 기업가치를 36배 이상 상승시킨 인물로 유명하다. 잭 웰치는 「업계 1∼2위가 될 수 있는 사업만 영위한다」는 목표아래 소형가전부문을 매각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체질을 개선시켰다. 특히 격렬한 토론과 인재중심의 경영 등을 통해 군림하는 사장에서 직원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코치」로 변신함으로써 GE의 옛 명성을 되살렸다는 평이다.

이제 이같은 전문 CEO 체제는 국내에서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중소·벤처기업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특히 대기업들은 오너 중심 경영의 한계를 전문 CEO 체제로 극복하며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과 LG전자 구자홍 부회장. 윤 부회장은 지난 96년 12월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현재까지 삼성전자를 실질적으로 이끌며 지난해 34조원대의 매출을 달성, 부임 첫해인 96년(16조원)에 비해 두배 이상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구 부회장 역시 지난 95년 부임 이후 회사를 급성장시켜 지난해 사상 최고치인 14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처럼 대기업에서 전문 CEO들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고 있는데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가 닥친 지난 97년을 전후로 새로운 경영 마인드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중소 IT 제조업체들도 전문 CEO 제도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과거의 비효율적인 경영으로는 디지털화된 신경제 체제에서 생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IMF 이후 인터넷 기업을 중심으로 창업과 경영을 분리하는 풍토가 확산되면서 IT 제조업체들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라는 사회적인 요구가 거세진 것도 전문 CEO가 자리잡게 된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실제로 인쇄회로기판(PCB) 생산업체인 대덕GDS의 유영훈 사장은 지난 96년 전무이사 대표로 승진하면서 실질적인 CEO가 됐고 99년 대표이사가 되면서 회사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통신장비업체인 디지텔도 이종석 사장이 대표가 되면서 지난 98년 1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지난해 200억원 규모로 성장했고 오피콤 고석훈 사장도 미국 ADC 근무경험을 살려 오피콤을 통신시스템 관련 토털솔루션 회사로 바꾸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제조업계에 전문 CEO 제도가 선진국처럼 확고히 자리잡았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전문 CEO 제도를 도입한 기업들 대부분이 아직 오너 중심의 마인드를 버리지 못해 전문 CEO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또 기업 구성원들도 전문 CEO를 단순한 「월급쟁이 사장」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있어 회사 전체를 탄탄하게 운영하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계호 리더스컨설팅그룹 대표는 『제조 IT기업들이 전문 CEO 제도를 도입한 주요한 이유는 전문 CEO가 절실하게 필요해서라기보다 사회적 요구에 편승한 경향이 강하다』며 『국내 문화에 알맞은 전문 CEO 제도의 정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위해 『전문 CEO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보상체계를 하루빨리 마련해 해외사례처럼 전문 CEO가 「스타」가 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규태기자 star@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