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고속도로를 타고가다 호법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바꿔 20분쯤 달리다 보면 도자기와 임금님에게 진상했다는 이천쌀의 명성이 남아 있는 이천에 다다르게 된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5분쯤 들어가면 현대전자 이천공장이 나타난다. 외부에서는 별로 크게 보이지 않는 이 공장의 대지면적은 34만평. 여의도공원의 1.5배만한 크기다.
주로 D램, 이동전화단말기를 생산하는 이 공장에서는 현대전자가 또다른 세계 일류 제품으로 육성중인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 장비가 생산되고 있다.
현대전자의 ADSL장비가 생산되는 멀티미디어 건물은 다른 건물에 비해 천정의 높이가 높다. ADSL집선장비(DSLAM)의 크기가 웬만한 사람키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보드제조부터 시스템조립까지 모두 이 공장에서 처리했지만 지금은 ADSL모뎀과 DSLAM 보드는 외주 생산을 통해 공급하고 이 공장에서는 보드 테스트와 시스템 조립만을 하고 있다.
현대전자의 ADSL제조공정 가운데 특이한 점은 DSLAM 성능 평가를 위한 오토테스트(AT) 공정이 있다는 것. 이는 가입자부터 DSLAM까지 거리에 따라 속도가 차이나는 점을 감안, 이를 효과적으로 테스트 및 검증할 수 있도록 제조공정에서 시험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철저한 시험을 거쳐 현대전자의 DSLAM집선장비가 출하되기 때문에 고객으로부터의 불만이 적다고 현대측은 설명했다.
ADSL장비는 사실 현대전자뿐만 아니라 국내 통신장비업체들의 수출 기대주다. 1세대 통신장비 수출을 이동전화단말기가 열었다면 2세대 통신장비 수출시대는 ADSL장비가 개막할 것으로 기대된다.
국산 ADSL장비의 강점은 지난해 전세계 ADSL 물량의 절반을 국내에서 소요했을 정도로 탄탄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철저한 시장검증을 거쳤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말기준으로 국내 ADSL가입자는 200만을 돌파했다. 이는 신뢰성이 판매에 가장 중요한 요소인 통신장비부문에서 적지 않은 이점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ADSL시장 초기에 진입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국내 업체보다 제품개발이 앞섰던 기업은 알카텔과 미국의 벤처업체 몇 곳 정도다. 이처럼 초기시장에 진입, 기술흐름을 주도함으로써 ADSL장비 분야에서는 이제 한국을 더이상 2류 국가로 치부하지 않는다.
국산 ADSL 장비의 성능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다는 것은 많은 칩 제조회사들이 국내 업체들을 우선 지원업체로 지정한데서 알 수 있다.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회사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사는 현대전자를 우선지원업체(알파사이트)로 선정한 데 이어 TI가 참가한 유수 전시회에도 현대전자 제품 전시공간을 따로 마련해주면서 자사 칩의 성능을 검증받으려 했다.
치열한 시장경쟁을 거친 중소 모뎀 제조업체들의 존재도 전체적인 경쟁력에서 플러스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초 너무 많은 기업이 ADSL시장에 진출, 과당경쟁 우려도 제기됐지만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을 거쳐 이제 똘똘한 모뎀 업체들만이 살아 남았다.
수출소식도 이제는 심심치 않게 전해진다. 현대전자가 지난해 5월 태국에 4000회선 규모의 ADSL처녀수출을 시작한 데 이어 맥시스템이 10월 데이터퀘스트테크놀로지와 총 131만대(1억828만5000달러) 규모의 ADSL모뎀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올해에는 미디어링크·삼성전자가 중국에 각각 10만포트 규모의 DSLAM 및 모뎀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 중국시장 진출에 성공했다.
ADSL과 밀접한 여러 가지 DSL기술에 대한 기술개발도 활발하다. 대칭형디지털가입자회선(SDSL), 초고속디지털가입자회선(VDSL), 음성전화지원 DSL(VoDSL) 등의 분야에서도 국내업체들이 속속 국산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국내 ADSL장비를 가장 근처에서 지켜봤던 한국통신 네트워크본부의 ADSL계획 박영식 부장은 『이제 국내업체들이 생산한 ADSL제품은 세계 일류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며 『충분히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IDC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디지털가입자회선의 세계 가입자는 오는 2004년까지 폭발적으로 성장, 4년 만에 14배 가량 성장한 6400만명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2003년께는 케이블 방식의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 수를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