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새시장을 노려라. 개척가능한 시장은 무궁무진하다.」
미국의 경제학자 레오 B 헨젤은 기업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10계명 가운데 「틈새시장 공략」을 강조하고 있다. 틈새시장을 노릴 줄 아는 기업가가 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밖에도 「결정은 과감하게 내리고 내린 결정은 신속히 수행하라」 「고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사항에 반응하라」 「혁신하라」 등을 주요 계명으로 꼽고 있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상품으로 개발하거나 사업화하고 고객의 입장에서 신속한 판단력을 바탕으로 시장개척에 나선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모그룹의 「1등이 아니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광고카피는 지나치게 1등만 강조해 사회적인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적어도 세계개척의 야망을 가진 기업가라면 항상 1등을 하겠다는 열정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1등에 대한 기업가의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의 무대가 바로 틈새시장이다. 시대와 경제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시장경제상황에서 정확한 고객욕구를 판단하고 남들보다 한발 앞선 상품을 개발한다면 개척가능한 노다지시장은 무궁무진하다.
과거 남다른 기획력을 발휘해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중국·유럽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오정 전화기가 좋은 예다. 기능상으로는 기존 전화기와 전혀 다를 바 없지만 생각의 틀을 깬 초소형 신개념 제품이라는 점이 틈새시장 개척을 가능하게 했다.
우리나라 틈새시장에서 잇따라 성공을 거두면서 틈새시장을 주력시장으로 탈바꿈시킨 제품도 있다. 우리 민족의 특성을 고려해 틈새시장 공략용으로 만도공조(당시 만도기계 위니아사업부)가 지난 95년 개발한 김치냉장고는 96년에 2만대 규모의 시장을 형성했으나 만 5년째인 2000년에는 그 규모가 100만대에 이르러 명실상부한 주력시장 제품으로 부상했다.
국내 위성방송수신용 세트톱박스 제조업체들은 끊임없는 연구개발, 한발 앞선 기획력, 글로벌 시장전략을 바탕으로 현재 전세계 주요지역 오픈마켓(유통시장)을 50% 이상 장악하며 「위성방송 세트톱박스 =Made in Korea」라는 등식을 만들어냈다.
휴맥스·한단정보통신·현대디지털테크·청람디지탈·프로칩스·알파캐스트 등 국내 주요 세트톱박스 제조업체들이 영국·독일·중동·이스라엘·폴란드 등 세계시장에서 지난해 한해에만 3억달러 이상의 수출고를 올렸다.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시장은 TFT LCD 패널 가격의 급락 여파로 전세계적으로 대중화의 길이 열리면서 국내 중소모니터업체들이 새롭게 공략할 수 있는 틈새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카디날·제논텔레콤·한국컴퓨터·뉴컴월드 등 TFT LCD 신진업체들은 올들어 미국의 국방부와 시스템통합(SI)업체, 유럽 SI업체, 독일 유통업체 등과 수만대 규모의 수출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면서 틈새 수출시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기존시장의 확대개념이 아닌 새로운 시장을 열어간다는 점에서 양화면 모니터, 산업용 특수모니터, 지문인식 모니터, 인공지능 모니터 등 신개념 모니터도 틈새시장 제품으로 부상중이다.
두솔시스템이 양화면 TFT LCD 모니터를 선보인 데 이어 윈컴멀티미디어도 양화면을 장착한 노트북PC를 출시, 틈새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솔전자와 뉴컴월드는 보안감시용 모니터, 공장자동화(FA)에 사용되는 산업용 모니터를 생산하고 있으며 콤텍시스템·IMRI 등이 의료용 LCD 모니터와 산업용 모니터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밖에도 플래시메모리 카드리더를 장착한 푸른전자의 모니터, TFT LCD 모니터 전면에 지문인식칩을 부착한 LG전자의 제품도 틈새시장 유망품목에 속한다.
한아시스템은 특정 국가의 통신장비시장에 적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장비를 개발, 일본 틈새시장을 열고 있다. 이 회사는 일본시장 환경에 맞는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 재생기와 일반TV를 연동해 네트워크를 통해 들어오는 광고데이터를 일정시간 보여주는 복합장비를 수출하고 있다.
음성데이터통합(VoIP) 토털솔루션 개발업체인 코스모브리지는 90년대 중반 틈새시장에 불과했던 VoIP시장에 뛰어들어 우리나라에서 이 분야 선도업체로 나섰다. 이 회사는 당시 틈새시장에서 출발해 지금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망한 VoIP의 핵심기술 보유업체로 부상하면서 미국·홍콩·뉴질랜드·일본 등 전세계 16개 도시에 관련장비를 수출하고 있다.
기가링크는 자체개발한 시분할디지털가입자회선(TDSL)이라는 독특한 기술을 적용, 저렴한 비용으로 고품질의 인터넷서비스를 지원하는 서비스사업자용 네트워크장비를 생산, 지난 한해동안에만 단일품목으로 450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소형가전분야 국내 틈새시장에서 연간 수천억원의 시장을 형성하면서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손꼽히는 제품도 매우 다양하다.
우리나라에 IMF지원체제가 본격화하면서 전 산업계가 매출감소라는 혹독한 시련을 맞았던 98년에 가나멀티테크놀로지는 선풍기모양의 전기히터로 월 4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호황을 누렸다. 사실 이 제품은 IMF 이전인 97년 출시돼 큰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디자인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IMF 시대상황 덕택에 틈새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다.
이외에도 「도깨비 방망이」란 대표명사로 통칭돼던 핸드믹서를 비롯해 소형 진공청소기, 초소형 믹서, 녹즙기 등이 국내시장에서 성공을 거뒀다.
컴퓨터 주변기기 분야에서는 최근들어 새로운 틈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신개념 키보드의 한 종류로 전주 덕성기술학원 강사인 신현길씨가 인체공학적 키보드 장갑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성공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키보드는 고무재질로 만들어 원형으로 말아갖고 다니거나 3, 4단으로 접어 수첩처럼 휴대할 수 있는 제품들이 개발돼 틈새시장에 진입했으나 키보드없이 장갑만 착용한 채 손가락의 각도와 위치만으로 글자를 입력할 수 있는 장갑형태의 키보드가 개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처럼 생각의 틀을 깨면 돈이 되는 상품들은 틈새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틈새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또 기업에는 세계 1등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틈새시장은 기회의 땅인 셈이다.
지난해 하반기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중소기업청 지정 528개 제조벤처기업을 대상으로 국내업체들의 기술수준을 설문조사한 바 있다. 당시 조사에서 전체기업의 74%인 381개가 세계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나머지 26% 가운데 단 1%만을 제외한 25%가 선진국보다는 다소 못하지만 곧 기술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기업의 잠재력과 성장가능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시장공략, 특히 해외시장공략 부문에서 강한 자신감은 레오 B 헨젤이 강조한 기업가 준수 10계명 중 앞에서 소개되지 않은 「목표를 정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 「지치지 말고 정열을 갖고 사업을 추진하라」의 계명을 실천하기 위한 키워드가 된다.
지난해초 삼성경제연구소가 펴낸 한국의 최강제품 성공비결 보고서에도 월드베스트의 성공비결은 앞선 기술력과 아이디어, 글로벌한 시장공략에서 비롯되며 이를 바탕으로 틈새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시작이 늦었다고 좌절할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욕구를 자극할 수 있는, 시대의 흐름이 부합되는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하고 이를 무기삼아 전장(戰場)에 나서는 것이 세계 일류가 되는 지름길이다.
<최정훈기자 jhchoi@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