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리옹대학 레지 드보레 철학교수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보화에 대해 「민중과 동떨어진 신화」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보사회가 인간 해방과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이념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 『정보사회는 민중지향적인 이념이 아니라 단지 전문가들을 움직이고 열광시킬 뿐』이라고 폄하했다. 정보화가 미국 테크노라트의 빈약한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드보레 교수는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제3세계 문제 특별자문역을 담당했던 세계적인 석학. 지난 60년대 체게바라 게릴라 부대에서 활동하다 체포돼 3년간 수감생활을 거친 프랑스 좌파 지식인의 대부다.
좌파 입장을 대변한 발언이겠지만 드보레 교수의 이같은 지적은 정보사회를 우리의 미래로 여겨온 대다수의 지식인들에게 충격적인 소리로 들린다. 모든 인류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정보 평등주의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정보사회의 철학적 토대가 허구가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지적이기도 하다.
그의 말대로라면 정보사회에서도 계층간·국가간 정보 불균형으로 인한 계층격차, 국가간 격차가 여전히 존재할 것이며 심화될 수도 있다. 「평등」을 기초로 한 정보사회에서 평등을 강조하는 만큼 불평등도 심화될 수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이기도 하다.
◇정보화, 정치적 이슈로 부각
「국가간 정보격차는 날로 심화되고 있으며 그 한 예로 뉴욕의 인터넷 사이트가 아프리카 대륙 전체 수보다 많을 정도로 세계적인 인터넷 빈부 격차가 극심하다.」
「정보기술은 경제성장과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으나 이와 함께 정보기술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에 디지털 격차를 유발해 빈부격차를 증대시킬 수 있다.」
UN경제사회 이사회의 경고문이다.
UN은 정보통신기술이 중요한 경제적·사회적 혜택을 주지만 국제간 국내 소득 격차를 확대시킬 수 있다며 정보통신기술에 대한 접근과 이 기술을 이용하는 계층이 확대되지 않는 한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새로운 지식기반 경제혜택을 누릴 수 없다고 주의한다.
아프리카의 경우 지난 99년 7월 현재 53개 국가중 50개 국가에서 수도에서만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다. 콩고·에리트레아·소말리아 등에는 아직까지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고 있다. 아프리카 전체 대륙의 인터넷 인구는 100만명이며 이는 2000만명에 육박하는 우리나라 인터넷 인구와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다.
UN경제사회이사회의 지적처럼 정보통신산업의 발달과 정보기기의 보편화는 계층·소득·학력·연령·지역간 정보격차로 나타날 수 있다.
정보격차가 사회불평등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다. 각 국 정부가 사회복지차원에서 정보화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유네스코·UNDP·OECD·ITU·APEC 등 국제기구에서도 정보격차로 인한 국가간·계층간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 국제조직은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국가간·계층간·연령간·소득수준간·지역간·교육수준간 정보격차가 현저히 벌어질 수 있으며 단순한 사회문제 차원에서 전세계 정치문제로 비화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정보격차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바로 「정보기회」에서 찾는다. 정보기회는 접속성, 공동체, 정보활용 능력, 콘텐츠, 창의성, 협력, 자금지원 등을 통해 다양한 계층, 계급, 국가, 연령, 성별간 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균등히 제공하자는 평등의 원리에 기초한다.
정보격차를 그대로 둘 경우 미래 정보사회의 계급적 격차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문제를 사회단체의 단순한 문제해결로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세계 각 국들은 지구촌 차원에서 문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정보 소외나 불평등 문제를 수요자 차원이 아닌 국가의 주요 정보정책 과제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 정보격차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자칫 정보격차를 그대로 둘 경우 미래 사회는 정보 소유의 유무에 따라 계급적 가치가 달라지는 불평등 사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정치적 도구로
최근 정보화는 하나의 문화현상에서 정치적 도구로 성장했다. 기업은 물론 정치권도 인터넷에 집착하고 있다. 인터넷 접속건수가 돈이되고 지지도가 된다. 인터넷이 오프라인을 보조하는 수단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갖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난 현상이다.
20세기 문화현상으로 시작된 인터넷이 전세계를 하나로 묶으면서 세계를 하나의 정보공동체로 만들었다. 인터넷을 장악한, 정보를 장악한 집단이 전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전도사 존 챔버스 시스코시스템스 회장은 「인터넷이 기업과 국가의 모든 분야에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말이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존 챔버스의 말에 따르면 인터넷이 국가와 기업은 물론 모든 분야에서 성공한 자와 패자로 나누는 엄청난 힘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인터넷에 의해 경제적, 정치적 승자와 패자가 구분되는 세상이 이미 도래하고 있음을 존 챔버스는 지적한다. 반면 정보화에서 소외된 집단들은 여전히 「하류」로 존재한다.
어떻게 인터넷이 이런 구조를 양성하는 정치적 도구가 됐을까. 사뭇 궁금하다.
인터넷은 20세기 말 전세계를 하나로 묶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의해 정보가 공유되고 정보를 가진 자가 세상을 지배하는 글로벌 인터넷 세계가 구축됐다. 모든 국가가 정보기술을 발달시키고 정보화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국가와 특정집단은 세계를 지배하기 이르렀다. 정보가 무기가 되고 돈이 되는 세상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구축된 정보화세상에서 인터넷은 단순 정보를 공유하는 단계에서 국가간 상품을 판매하고 특정 기업에 이익을 주는 순환고리를 갖게 된다. 정보화에 앞선 특정세력은 또 다른 신기술을 개발해 기득권이 강화된다.
마르크스가 그의 저서 자본론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소유구조의 문제점이 「평등」을 기초로 한 정보화 사회에서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비판여론도 등장했다.
인터넷이 경제구조에서는 새로운 생산력을 증대시키고 자본을 집결하는 도구로, 상부구조에서는 이러한 경제체제를 완고하게 유지하는 틀로 작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보화가 사회적 생산을 극대화시키는 도구였다면 그 뒷면에는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고 유지시키는 재생산의 첨병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인터넷은 경제·문화 사회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권력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 종사하며 특정집단의 기득권을 반영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 혁명 속에는 소외된 다수가 존재한다는 드보레 교수의 지적처럼 정보화물결에 소외된 다수의 「민중」이 존재한다는 것이 입증되는 셈이다.
바로 정보화가 국가문제, 정치문제로 급부상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김상룡기자 sr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