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의 황제기업 - 재창조(리인베토링)에 성공하는 HP
휴렛패커드(HP)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표현은 「실리콘밸리의 창조 기업이자 실리콘밸리의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벤처기업」이다. 지금은 470억달러 규모의 세계적인 컴퓨터 기업으로서 세계 정보기술(IT) 시장의 중심에 서 있지만 60년 전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에 있는 한 차고에서 시작한 HP의 역사를 상기하면 쉽게 수긍이 간다.
HP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시장 환경이나 기술 등의 변화에 잘 대응한다는 것이다. 처음 계측기 회사로 시작해 컴퓨터 부문으로 발전했으며, 그 다음에는 유닉스가 향후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자 미리 시장에 뛰어들어 큰 성과를 올렸다. 또 다른 기업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레이저나 잉크젯 프린터를 출시해 시장을 주도했다.
지난해에는 새로운 로고 및 브랜딩 전략과 함께 사람들을 위한 인터넷 작업을 용이하게 해줄 기업으로 또 다른 변신을 선언했다. 이렇듯 HP의 경영층은 미래 시장을 파악한 가상현실 속에서 항상 과감하고도 끊임없는 변신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HP가 말하는 「재창조(리인벤션:reinvention)」 정신이다.
그렇다면 향후 HP의 변신은 어떻게 구현될까. 이에 대한 답은 HP의 칼리 피오리나 회장이 21세기 첫 주제로 내세운 「무선기술로 40억 인구를 잡자」를 통해 예견할 수 있다.
전세계 50억명 인구중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40억명을 네트워크 속으로 끌어들이려면 유선과 PC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 칼리 피오리나 회장은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고 모든 인류가 인터넷 혜택을 누리는 본격적인 무선통신시대를 「디지털 르네상스」로 표현하고 있다. 닷컴기업이 일어선 게 인터넷 성장의 제 2단계라면 닷넷(네트워크 중심)이 제 3단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HP의 21세기 재창조의 첫번째 모습은 이같은 대전환을 이루는 「닷넷(.NET) 시대」를 대비하는 것으로 귀결될 전망이다.
닷넷은 모든 정보기기가 인터넷에 접속돼 언제 어디서나 작동할 수 있는 개념이다. HP는 이를 「쿨타운」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그 의미를 구체화했다. 쿨타운은 모든 사람과 장소, 사물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쉽게 접속되는 「멋진 세상」을 일컫는 말로 현재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고 있는 40억명의 인구도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와 인터넷의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HP가 구상하는 네트워크는 5가지다. 「개인 창조성의 네트워크」 「기존 비즈니스 형태를 바꾸는 네트워크」 「무선 인터넷을 통한 네트워크」 「개개인에 충실한 네트워크」 「인간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네트워크」가 바로 그것. 이러한 모토 아래 PC, 프린터, 팩스, 카메라 등 모든 단말기를 인터넷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모든 인간들, 사물, 기기들을 네트워크로 통합하는 e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마케팅 전략이다.
이같은 HP의 네트워크 전략은 이미 전방위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휴대폰에 자사 프린터를 탑재해 어느 곳에서나 e메일, 웹페이지 등을 프린트할 수 있는 새로운 휴대형 프린팅 e서비스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HP는 노키아와 제휴해 휴대단말기와 프린터를 무선환경에서 연동할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에는 새로운 지역무선커뮤니케이션 기술 「블루투스」를 발표하며 이미 「옴니북」사의 노트북과 프린터에 적용했다. 또 스트리밍 미디어 등에 적용을 모색하고 있다. 네트워크 환경의 모든 기기가 다른 기기의 새로운 자원이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변신으로 HP는 단순한 컴퓨터 하드웨어, PC, 프린터 등의 제조업체의 이미지에 무선네트워크, 소프트웨어 및 컨설팅 사업 영역을 접목시켰다. 지난해 컨설팅 사업부문의 인원을 대폭적으로 늘려 미래사업을 대비했으며, 세계적인 인터넷 소프트웨어 솔루션 업체인 블루스톤도 인수했다.
이와 함께 「총체적인 경험을 고객에게」, 즉 TCE(Total Customer Experience)의 구호를 열창하며, 전사적으로 고객 만족도를 높이는 프로그램을 확립하고 있다. 이는 기획에서부터 디자인, 설치, 관리 등의 단계를 두고 전사적으로 지원하는 서비스다.
변신의 황제, 재창조 정신을 구현하는 HP에서 칼리 피오리나 회장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피오리나 회장은 이 회사 최고경영자로 부임한 후, 83개로 쪼개져 있던 사업부를 12개로 통합하고 사업 방향을 인터넷 중심으로 선회하는 결단을 내리는 등 HP가 또 다시 노리는 재창조를 이끌어 내기 위한 과감한 조직혁신을 꾀했기 때문이다.
특히 HP는 조직을 마케팅, 영업과 같은 고객 활동에 초점을 맞춘 「전방위 사업단」과 컴퓨터 제작, 제조가 중심이 되는 「후방위 사업단」으로 나눠 합병했다. 당시 임원들은 새 조직개편안이 실행되는 데 1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으나 피오리나는 단 3개월 만에 해치우는 결단력을 보여주었다.
HP는 조직개편 후 핵심 부서 임원에게 더 많은 권한을 부여했다. 서버컴퓨터 사업부를 담당하고 있던 앤 리버모는 주요 고객 100개사를 통합 관리했다. 그 결과 대표적인 닷컴기업인 아마존이 운용하는 자사 컴퓨터 서버의 90%를 공급했고, 주력품 중 하나인 유닉스 서버판매를 통해 수익을 13%나 늘렸다. 현재 이 회사가 주력하고 있는 PC와 노트북 판매는 각각 62%, 93% 폭증했다.
변신은 HP 조직 운영에도 예외가 아니다. 칼리 피오리나 회장은 이익을 공유하는 HP의 임금체계를 실적위주의 보너스제도로 바꿨다. 또 자신들이 먼저 e고객을 위해 e기업이 돼야 한다는 모토 아래 사내의 모든 업무 프로세스, 사내 구매 업무 및 결제업무를 e프로세스화했다.
사업소가 있는 지역이나 국가에 그곳의 발전을 위해 사회적 공헌을 처음으로 실시한 HP는 기존 프로그램 외에, 정보격차해소를 위해 도시에서 벗어난 원격지의 소외계층을 위한 정보화운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인터넷 시대 공통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정보화 노력으로 사회기여를 구현하겠다는 것이다.
<신혜선기자 shinhs@etnews.co.kr>